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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재정硏, 공공기관 182곳 분석

"신입 사원은 입사 후 4~5년 지나야 제 몫을 할 수 있는데, 고학력자 신입 사원들이 그만두는 경우가 너무 많아졌어요."

정부가 '학력·지역·성별 차별 타파' 등을 내걸고 도입한 공공 기관 블라인드 채용이 신입 사원 이직률을 더 높이는 결과를 낳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1일 국책 연구 기관인 조세재정연구원이 펴낸 '공공 기관 채용 정책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블라인드 채용 도입 전 10% 수준이었던 신규 입사자의 1년 이내 퇴사율이 블라인드 채용 도입 후 14% 수준으로 올랐다.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한 공공 기관 182곳을 분석한 결과다.

◇"자격증 준비한 지원자들에게 유리"

블라인드 채용은 2017년 6월 청와대 수석 보좌관 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공공 부문에 전면 도입을 지시한 뒤 정착됐다. 입사 지원서에 출신지, 출신 학교, 가족 관계 등을 적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차별적인 평가 요소를 제거하고 직무 능력을 중심으로 평가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출신 학교를 보지 않겠다는 채용 방식 때문에 도리어 필기·면접이 중요해졌다. 채용 담당자들로서는 변별력을 확보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기 힘들어서다. 한 공공 기관 관계자는 "시험을 어렵게 내다 보면 고시 공부를 하다 오거나 회계사·세무사 자격증을 준비하던 사람들이 더 높은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다"며 "이런 사람들은 회사 들어온 뒤에도 자격증 공부에 시간을 뺏겨 업무가 뒷전인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다.

보고서는 공공 기관 채용 절차가 표준화하면서 채용 절차가 유사한 공공 기관 중 좀 더 좋은 대우와 높은 급여를 주는 곳으로 철새처럼 이직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지원자 정보 부족해 순발력 테스트"

연구진의 인터뷰에 응한 공공 기관 8곳의 채용 담당자들은 블라인드 채용에 따른 문제점을 조목조목 털어놓았다. A 공공 기관 담당자는 "블라인드 채용을 실시하다 보면 이공계 출신 지원자들이 경제 논술 시험에서 인문계 출신 지원자들보다 훨씬 불리하기 때문에 예전보다 이공계 출신 합격자 비율이 현저하게 줄었다"고 했다. 그간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과학기술 연구 분야까지 블라인드 채용을 획일적으로 적용해 국가 연구 경쟁력을 갉아먹는다는 비판은 끊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연구·개발을 목적으로 하는 공공 기관에 한해 블라인드 채용을 완화할 수 있도록 하자는 법안이 국회에 제출돼 있기도 하다.

고졸 출신이 역차별을 받기도 한다. B 공공 기관 담당자는 "고졸 출신을 뽑아야 하는 시험에 우리 공사의 시험 경향을 파악하겠다며 대학 재학생들이 무더기로 지원해 필기 전형 합격자 1등부터 10등까지 대학 재학생인 적이 있었다"며 "이들은 서류 전형에 합격해 놓고도 고졸 증빙을 해야 하는 면접 과정엔 전원 불참했다"고 했다.

공공 기관 채용 담당자들이 느끼고 있는 블라인드 채용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채용 담당자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공공 기관들이 뛰어난 직무 역량을 갖춘 다양한 인재들을 선발하기보다는 순발력 있고 표현력이 좋은 지원자들을 선발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면접 전형 단계에서 현실적으로 지원자 한 명당 배분할 수 있는 시간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연구를 담당한 민경률 조세연 초빙연구위원과 손호성 중앙대 교수는 "응시자의 역량을 살펴보는 데 있어, 학위와 전공 등이 정말 편견 요소인지는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기고자 : 김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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