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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남북] "바보야, 문제는 팝콘이 아니야"

    김성현 문화부 차장

    발행일 : 2021.06.02 / 여론/독자 A31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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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팝콘이 위기의 영화관을 구원할 수 있을까. CGV와 롯데시네마 같은 복합 상영관이 속해 있는 한국상영관협회의 입장문을 읽다가 문득 들었던 의문이다. 이 협회는 최근 입장문에서 "영화 산업을 살리기 위한 노력이 물거품이 되지 않도록 음식물 섭취를 금지하는 정책은 재검토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은 영화 관람을 하면서 물이나 음료수는 반입할 수 있지만, 팝콘이나 다른 간식은 일절 먹을 수 없다. 이 방역 수칙을 완화해달라는 주장이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 통계를 보면 전체 극장 매출 가운데 매점이 차지하는 비율은 22.4%(6400억원)에 이른다. 극심한 피해를 감안하면 이들의 입장에 충분히 공감이 가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이 산술적 계산에서 간과하는 점이 있다. 바로 소비자의 불안감이라는 요소다.

    지난해 미국 극장이 재개관했을 당시, 저녁 극장 풍경을 묘사한 뉴욕타임스의 기사는 이 심리적 측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누군가 팝콘 봉투의 바닥에 있는 알맹이를 흔드는 소리였을까? 마른 기침이었을까? 관객들이 먹거나 마시지 않을 때는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 상기시켜주는 극장 직원들은 있을까? 옆자리의 여성은 계속 '턱스크'를 한 채로 영화를 보려는 걸까?" 팝콘으로 당장 매출은 올릴 수 있을지 몰라도 관객들의 불안감은 증폭될 수밖에 없다. 입장문에는 이 점이 빠져 있다.

    코로나 이전의 영화관은 회전율 높은 인기 식당과도 같았다. 특히 한 해 장사의 대목인 7~8월 휴가 기간에는 하루 100만 명 이상의 관객이 쉴 새 없이 영화관으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사회적 거리 두기가 화두가 되면서 사실상 회전 자체가 멈춰 버렸다. 엊그제 전국에서 231회를 상영한 영화의 하루 관객은 605명에 불과했다. 한 번 상영했을 때 관객 3명도 안 들어왔다는 뜻이다. '영화관이 비디오방이나 다름없다'는 장탄식이 나올 수밖에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넷플릭스 같은 온라인 영상 서비스의 등장으로 극장에 갈 일이 더욱 줄어들고 말았다. 배달 서비스의 인기로 굳이 식당에 가야 할 필요가 사라진 상황과도 비슷하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회전율 저하가 극장의 '내우(內憂)'라면, 넷플릭스의 등장은 '외환(外患)'이다. 속시원한 해법이 보이지 않는 것도 실은 '내우외환'이 얽혀 있는 복합적 위기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이전의 극장을 인기 식당에 비유했지만, 이 식당의 메뉴 구성에는 문제도 적지 않았다. 꼼꼼한 사실 확인이나 개연성을 건너뛴 채 정의감과 상업성을 적당하게 버무린 '분노 상업주의', 여성·장애인·외국 동포 같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가학적 장면 등이 대표적이다. 오로지 '1000만 관객'이라는 공식에 매달려서 배우 캐스팅부터 드라마 전개까지 천편일률적인 공산품 같은 영화도 적지 않았다. 몸에 좋은 영양식보다는 단짠(달면서 짠) 위주의 자극적인 패스트푸드와 정크 푸드에 가까웠다고 할까.

    식당 운영에 문제가 생겼다면, 새로운 조리법(레시피)을 지니고 있는 일류 요리사들을 모셔와야 한다. '국제시장'의 윤제균 감독이 연출한 뮤지컬 영화 '영웅', 류승완 감독의 '모가디슈' 같은 흥행 감독의 신작들이 1년 가까이 개봉일을 잡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들의 흥행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코로나 시대에도 대작(大作)에 대한 갈증은 여전하다. 그렇다면 양질(良質)의 한국 블록버스터야말로 위기의 극장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일지도 모른다. 진단이 어긋나면 처방은 잘못될 수밖에 없다. 지금 극장 문제의 핵심은 팝콘이 아니다.
    기고자 : 김성현 문화부 차장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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