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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인사이트] 풍경화를 보고 만든 '그림 같은 자연'… 정원, 예술이 되다

    김영애 이안아트컨설팅 대표

    발행일 : 2021.06.02 / 여론/독자 A29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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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슬라 '스페이스X' 우주선의 우주복을 영화 '어벤저스'의 의상 디자이너 호세 페르난데스가 만들었다고 한다. 우주여행을 꿈꿔온 일론 머스크는 "어린이들에게 우주여행의 꿈을 심어줄 수 있는 멋진 패션이 필요했다"고 했다. 실제의 우주복이 영화에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 속 우주복이 실제의 우주복 디자인에 적용된다니. 가상 세계가 현실을 지배하는 시대가 도래했구나 싶다. 그러나 알고 보면 인류 문명 대부분은 이런 식으로 발전되어 왔다. 인간의 상상이 현실을 만들어냈다는 점은 자연에서조차 예외가 아니다. 그 흔한 정원이 그렇다. 원래부터 있던 것, 그저 피어있는 꽃과 풀을 잘 정리한 것처럼 보이는 정원도 알고 보면 자연을 보호하겠다는 의식과 판단, 그림처럼 아름답게 꾸미겠다는 미적 상상력이 없었더라면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자연과 과학이 우열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문명을 개척한 쌍두마차임을 드러내는 지점이 바로 정원이다. 특히 그림을 보고 조성한 영국의 정원이 대표적이다. 17세기 중반부터 영국 귀족 자제들 사이에는 현장 교육차 프랑스를 거쳐 이탈리아까지 다녀오는 '그랜드 투어'가 유행이었다. 이들은 이탈리아의 예술품도 수집했는데, 클로드 로랭(1600~1682)의 풍경화가 가장 인기였다. 당대 이탈리아의 풍경에 그리스·로마 신화의 장면을 적절히 섞어 신비로운 그림을 그렸던 화가다. 프랑스 출신으로 이탈리아에서 삶을 보낸 화가의 작품 대부분이 현재 영국에 남아있다. 얼마나 많은 영국인이 그의 작품을 사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

    영국 귀족들은 로랭의 그림을 보다가 그림 속 정원을 직접 만들어보기로 결심한다. 여기서 '픽처레스크 양식', 즉 '그림 같은' 정원이라는 말이 생겨난다. '풍경식' 정원이라고도 한다. 그림을 보고 그대로 따라 정원을 만들었으니 그림같이 아름다웠다. 완만한 언덕과 로마식 다리, 팡테옹 같은 둥근 건축물, 그리고 적합한 곳에 식재된 나무. 자연스러워 보이는 이 풍경은 실은 가장 인공적인 자연인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스타우어헤드(Stourhead) 정원이다. 귀족 헨리 호어 2세는 젊은 아내와의 사별 후, 상심을 달래고자 이탈리아 여행을 3년 동안 다녀온 후 정원 조성에 공을 들인다. 정원의 한 지점에서 바라본 풍경은 로랭의 그림 속 풍경과 똑같아 깜짝 놀랄 정도다.

    이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들어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과학'이 동원됐을까? 대표적인 예가 바로 '채스워스(Chatworth) 하우스'다. 낙차를 이용해 물이 떨어지는 아름다운 폭포를 만들기 위해 루이 14세의 베르사유 정원에 참여한 프랑스 엔지니어 그리예(Grillet)를 불러들였다. 베르사유 정원의 유명한 호수와 아름다운 분수들은 왕의 명령에 의해 인공적으로 조성된 것이다. 전기도 없던 시절, 지름 10m의 물레바퀴 14개를 말 수십 마리가 돌려 물을 끌어올렸다. 채스워스 하우스를 물려받은 6대 데본셔 공작(1790~1858)은 그리예의 분수에 만족하지 못했다. 러시아에서 니콜라스 1세를 알현했을 때 황제가 다음 해에는 채스워스 하우스를 방문하겠다고 하자,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황제의 여름 궁전보다 더 멋진 분수대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1844년 하늘 위로 90m를 솟아오르는 높은 분수대를 만들어 공작의 욕망을 실현해 준 것은 정원사 조셉 팩스턴(1803~1865)이었다.

    팩스턴은 신분이 낮은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정원사 일을 시작했지만 이내 뛰어난 실력과 성실함으로 데본셔 공작의 눈에 들었다.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9시면 정원 일과를 모두 마쳤다는 그는 공작의 친구이자 그의 꿈을 실현해주는 엔지니어였다. 데본셔 공작의 지인이자 빅토리아 여왕의 부군인 앨버트 경이 프랑스의 박람회를 본떠 세계 최초의 '만국 박람회' 계획을 세웠을 때, 가장 큰 걸림돌은 빠른 시간 내 거대한 박람회장을 만드는 것이었다. 건축가와 엔지니어들이 두 손 들어버린 이 문제를 해결한 이도 팩스턴이었다.

    아이디어는 정원에서 나왔다. 온실에서 기르던 아마존의 거대한 수련, 소위 '빅토리아 수련'은 마치 접시처럼 지름이 1m가 넘도록 자라났고, 거대한 잎맥이 서로 연결되어 그 위에 팩스턴의 어린 딸을 올려 놓아도 지탱할 정도로 튼튼했다. 팩스턴은 이 잎맥에서 영감을 얻어, 온실을 지을 때 사용했던 금속과 유리를 활용해 거대한 '수정궁(Crystal Palace)'을 완성했다. 중앙 기둥이 없이 조립식으로 연결해 설치와 해체가 간편한 구조였다. 덕분에 1851년 세계만국박람회는 순조롭게 시작됐다.

    정원에서 출발한 과학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지난 2010년 상하이에서 열린 만국박람회 영국관이 보여준 단 하나의 전시물도 영국 정원과 관련된 것이었다. 빨대가 꽂힌 듯한, 혹은 민들레 꽃처럼 독특하게 생긴 건축물은 영국 건축가 토머스 헤더윅의 작품으로 '인사이드 헤더윅 스튜디오'라는 이름으로 한국에서도 전시된 바 있다. 단 하나만 전시하자는 전략에 맞게 선택된 건 씨앗이다. 영국이 주도해 진행하는 '밀레니엄 시드 뱅크 프로젝트'로, 먼 훗날 인류의 미래를 위해 세계 각국에서 씨앗을 수집하여 냉동 보관하는 것이었다.

    팬데믹으로 세계 여행길이 막히자 사람들이 정원을 찾아다니고 있다. 집 안팎으로 테라스를 꾸미고, 옥상은 인기 방문지가 되었으며, 정원을 테마로 한 다큐멘터리나 전시회, 그림도 인기다. 한 통계에 따르면 버스 정류장의 하차 인구도 도심지는 줄고 공원 근처가 늘어났다고 한다. 도심 곳곳을 장식하는 LED 디스플레이나, 미디어 아트 전시회에서도 단연 인기 있는 테마는 자연이다. 첨단의 과학기술을 동원해 만나는 것이 바로 그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그동안 잘 들여다보지 못했던 자연이라니! 아이러니하지만, 사실 자연은 과학의 반대편이나 뒤편이 아니라 늘 그 앞에 있었던 것이 아닐까?
    기고자 : 김영애 이안아트컨설팅 대표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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