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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삼희의 환경칼럼] '탄소 중립', 대통령이 5년만 더 벌어줬더라면

    한삼희 선임논설위원

    발행일 : 2021.06.02 / 여론/독자 A30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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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에너지기구(IEA)가 5월 18일 발표한 '2050 순배출 제로(Net Zero by 2050)' 보고서를 읽으면 '탄소 중립'이 얼마나 어려운 목표인지 실감이 난다. 전력 생산을 지금의 2.5배로 늘려 모든 에너지를 전기화(化)하면서, 그 70%를 태양광·풍력으로 조달해야 한다. 원자력도 2배로 늘려 10% 전력을 담당케 한다. 2035년 휘발유·디젤차 판매를 중단하고, 2040년엔 모든 석탄발전소 폐쇄와 함께 건물 절반을 무(無)탄소로 개조해야 한다. IEA는 현존하지 않거나 실험 단계의 '마이너스 배출(negative emission)' 기술도 대거 동원해야 한다고 봤다. 이산화탄소 포집·저장(CCS), 바이오 & 포집·저장(BECCS), 탄소 직접 포집(DAC) 등의 기술이다. 태양광, 원자력, 그린수소 등 무탄소 에너지를 최대한 동원해도 어쩔 수 없는 이산화탄소는 다시 빨아들여 지층 깊은 곳에 저장한다는 것이다.

    지금도 석탄발전소 굴뚝에서 이산화탄소를 걸러내는 포집·저장(CCS) 시범 프로젝트들이 일부 가동되고 있다. 최근엔 더 나아가, 바이오매스 발전소에 이산화탄소 포집 설비를 달자는 바이오 & 포집·저장(BECCS) 아이디어가 각광받았다. 스웨덴 박사 과정생이 2001년 사이언스에 발표했던 개념이다. 나무가 자라면서 공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입하면, 그 나무를 태워 에너지를 생산하고, 그때 나오는 이산화탄소는 걸러낸다는 것이다. 유엔 산하 기후변화정부간패널(IPCC)은 2014년 보고서에서 '기온 2도 이내 상승 억제' 시나리오를 116개 제시했는데, 그중 101개가 BECCS를 적용한 전략이었다.

    더 획기적인 것이 '탄소 직접 포집(DAC)'이다. 빨아들인 공기를 솔벤트 용액에 통과시켜 이산화탄소만 흡수시킨 후 900도 열을 가해 다시 분리해낸다는 것이다. 석탄발전소 배기가스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15% 수준이다. 거기다 포집 장비를 다는 것도 실용화돼 있지 않은데, 0.04% 농도의 일반 공기에서 이산화탄소를 분리해낸다는 것은 얼마나 까다롭겠는가. 현재 DAC로 이산화탄소를 처리하는 데 t당 250~600달러 든다고 한다. 국내 온실가스 배출권 가격(20달러 안팎)의 12~30배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이런 마법적 기술들로 2050년 기준 연간 이산화탄소 76억t을 처리해야 탄소 중립이 실현된다고 봤다. 현재 한국 배출량의 11배, 세계 배출량의 22%만큼이다. 여기에 함정과 음모가 있다는 비판도 많다. 실현 전망도 불확실한 기술을 내세워 당장 시급한 '탄소 감축'을 뒤로 미루는 핑계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석탄발전소도 나중에 포집 설비를 장착하면 청정 에너지(clean coal)가 되니 그대로 갖고 가자는 논리로 연결될 수 있다. 원래 땅속에 있던 석탄·석유를 굳이 꺼내서 태운 뒤에 거기서 나온 이산화탄소를 기를 쓰고 포집해 다시 땅속에 집어넣는다는 발상이 이치에 맞나 하는 생각도 든다.

    국내 전문가 69명이 참여한 '저탄소 사회 비전 포럼'이 작년 2월 10개월 작업 끝에 '2050 저탄소 전략'을 발표했다. IEA의 이번 로드맵 비슷한 성격이다. 포럼은 포집·저장(CCS), 탄소 직접 포집(DAC), 그린 수소 등의 미래 기술들을 적용한다면 2050년 배출량을 현 수준의 25%로 낮출 수 있다고 했다. '고려 가능한 모든 옵션을 포함한 가장 도전적인 안'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작년 10월 돌연 '2050 탄소 중립'을 국제사회에 선언했다. 물론 다수 선진국이 같은 목표를 제시했다. 하지만 선진국들은 1990년, 늦어도 2000년부터는 온실가스 감축에 돌입했다. 영국의 경우 에너지 분야 2017년 배출량을 1990년의 65% 수준으로 줄여놨다. 우린 같은 기간 배출량이 2.6배가 됐다.

    탄소 중립은 세계 공동의 과제다. 에너지, 산업, 운송, 도시 등 모든 시스템을 다 바꿔야 한다. 그러나 20년, 30년 앞서 나간 나라들과 이제 시작해야 하는 한국은 조건이 다르다. 중국만 해도 탄소 중립 도달 시점을 2060년으로 잡았다. 문 대통령은 며칠 전 탄소중립위원회 출범식에서 "우리가 어렵다면 다른 나라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러나 영국엔 탄소 중립이 60년짜리 프로젝트지만, 한국은 지금부터 줄여가면 시간이 30년밖에 없다. 우리는 탄소 배출이 많을 수밖에 없는 제조업 중심 국가다. 우리가 진작 온실가스 감축에 나섰어야 했다는 후회는 있다. 그럼에도 대통령이 다소 체면 손상을 무릅쓰고라도 5년을 늦춰 '2055년 탄소 중립'을 선언했더라면 국민과 기업은 한결 숨통을 돌릴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무탄소로 대량 에너지 공급이 가능한 원자력까지 활용한다고 했더라면 더 나았을 것이다.
    기고자 : 한삼희 선임논설위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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