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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리뷰] 파묻힌 아이

    박돈규 기자

    발행일 : 2021.06.02 / 문화 A16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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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이디푸스'보다 참담한 가족의 비극

    어둠 속에서 빗소리가 들린다. 조명이 들어오면 미국 시골의 한 농가. 닷지(손병호)는 위스키를 홀짝이며 고장난 TV를 보는데 자주 쿨럭거린다. "약 먹고 기침 끝내!"라고 아내 핼리(예수정)가 소리 지른다. 집은 땅에 반쯤 묻혀 있는 모양새다. 창밖으론 옥수수밭이 보인다.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큰아들 틸든(윤재웅)이 옥수수를 한 다발 안고 들어온다.

    "니 피붙이가 저 뒷마당에 묻혀 있어."(닷지)

    "비 그쳤을 때 올라오는 흙냄새가 좋아."(핼리)

    연극 '파묻힌 아이'(Buried Child)는 시작부터 기괴하다. 부부는 섬뜩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다. 붕괴 직전의 낡은 집과 이 가족은 닮아 있다. 짐짓 모른 척하는 현실 부정, 히죽거리는 냉소, 통하지 않는 대화가 무대를 떠돈다. 틸든의 아들 빈스(황성연)가 애인과 함께 이곳에 도착하지만 아빠도 할아버지도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장대비는 계속 땅을 두드리고, 묻어둔 비밀은 조금씩 형체를 드러낸다.

    1979년 퓰리처상을 받은 이 희곡(작가 샘 셰퍼드)은 이번이 국내 초연이다. 이토록 오래 걸린 이유는 자명하다. 이야기가 참담하고 야만적이기 때문이다. 모자(母子)가 충동적인 관계를 맺었고, 그렇게 태어난 아기를 몰래 뒷마당에 매장했다. 지옥을 경험한 이 가족은 모두 과거에 인질처럼 붙잡혀 있다. 삶은 긴 형벌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근친상간, 영아 살해, 알코올중독, 폭력…. 경기도극단이 제작한 '파묻힌 아이'는 관객을 의도적으로 불편하게 한다. 비영리 극단이 아니면 올리기 힘든 이 연극에 무대미술가 이태섭, 배우 예수정, 연출가 한태숙 등 이해랑연극상 수상자가 3명이나 참여했다. 그들은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한 '오이디푸스'보다 훨씬 더 충격적인 방향으로 이 비극을 이끌었다. 패륜과 살인의 기억에서 도망칠 수 없는 가족에 대한 잔인한 탐구다.

    이 연극은 외피부터 일그러져 있다. 거실 한쪽에 사람이 들어갈 누울 만한 구덩이가 있는데 그곳에 잡초가 자란다. 또 무대를 객석 쪽으로 툭 튀어나오게 설치했다. 그 경계 없음은 관객을 향해 '너희도 별반 다르지 않아' '네 뒷마당에 숨긴 걸 생각해봐'라고 말하는 것 같다.

    진실이 드러날수록 무대는 아수라장으로 변해간다. 무기력한 술꾼 닷지나 목사와 외도를 즐기는 핼리나 비틀거리기는 매한가지다. 물탱크(800L)에서 떨어지는 빗물과 소리, 흙과 옥수수밭, 구덩이를 이용한 엔딩은 강렬했다. 다만 개막 날 몇몇 배우의 연기는 계산된 혼돈이라기보다는 조율이 덜 끝난 악기처럼 어수선했다.

    '파묻힌 아이'는 관객에게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훈계하지 않는다. 저렇게 살아도 되는지 자문하게 한다. 오는 6일까지 경기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
    기고자 : 박돈규 기자
    장르 : 고정물
    본문자수 : 1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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