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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장품] (6) 유동근과 체리

    정상혁 기자

    발행일 : 2021.06.02 / 문화 A17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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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반짝이는 모든 것은 견뎌낸 뒤의 결정체다"

    "예술가는 딱 두 종류인 것 같다. 처절한 사람, 먹고살 만한 사람. 결국 처절한 사람이 이긴다. 처절하게 견뎌내면 반드시 초월의 단계가 온다."

    배우 유동근(65)씨는 이렇게 말하며 체리 하나를 꺼내 손가락으로 들어 보였다. 농구공만 한 붉은색 체리 조각으로, 신진 팝아트 작가 제이크 리(본명 이재영·46)의 작품이다. 5㎜ 단위로 자른 탄소섬유를 틀에 붙이고, 투명 접착체를 올려 매끈하게 갈아내는 반년간의 중노동 끝에 재배된 과일이다. "집 거실에 놓고 볼 때마다 정갈한 느낌을 준다"고 말했다. "전인화씨 생각도 나고." 제목이 '신의 축복'이다.

    작가는 비(非)미술 전공자로, 경주용 자동차 차체 제작자 출신이다. 스포츠카 외관에 사용되는 탄소섬유를 소재로 조각을 제작하고 있다. 아크릴에 고온·고압을 가해 원사(原絲)를 뽑아낸 뒤, 다시 1000도 이상의 열처리를 거쳐 원료는 철보다 10배 강하고 4배 가벼운 전혀 다른 성질을 띠게 된다. 유씨는 "오랜 탄화 과정에서 오는 변화라는 독특한 상징성이 있다"며 "선 몇 개 찍 긋는 이른바 거장의 그림보다 의미가 값지다"고 말했다. 미술 경영을 전공한 딸과 함께 전시장을 다니며 미술에 애착이 깊어졌다. "말하자면 딸이 내 큐레이터다. 옥션에서 가격이나 유명도 따져가며 사는 건 촌스러운 짓이라고 하더라. 맞는 말 같다. 내가 끌려야 한다."

    유동근은 이 작가의 후원자를 자처하고 있다. "2017년 한국방송연기자협회 회장을 맡아 협회 로고를 새로 만들면서 처음 작가를 소개받고 눈여겨보게 됐다"고 했다. 가수들의 앨범 표지 및 디자인 업무로 생계를 잇던 작가가 3년 전 작업에 대한 회의로 창작 활동을 그만두려 했을 때 손을 내민 것도 유씨였다. 제작비를 일부 지원하고, 미술계 인사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도움을 받으려면 누군가 내게 손 내밀어줄 수 있도록 실력과 자격을 갖춰놓는 게 중요하다. 나는 그걸 발견했을 뿐이다." 작가는 "힘들 때마다 유동근이 내 컬렉터라는 사실이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유씨는 2년 전부터 한국대중문화예술원 원장을 맡아 연기자 지망생을 길러내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지원으로 운영되는 일종의 한류 인재 양성 프로젝트다. "예전에 드라마 '용의 눈물' 찍을 때 김재형 감독이 잘 때도 수염 분장 못 떼게 했다. 대체 나한테 왜 이러나 싶었다. 분장과 어울리려면 불편함을 체화해야 한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됐다." 그는 지금 과거의 깨달음을 후대에 돌려주는 중이다. "시작 단계에서는 다 고달프다. 대부분 중간에 그만둔다. 그러나 지금 보이는 모든 반짝이는 것들은 견뎌낸 뒤의 결정체다."

    ☞팝아트 작가 제이크 리는 누구?

    기계공학적 전문성에 바탕해 탄소섬유 등을 소재로 대중문화 아이콘을 제작하고 있다.
    기고자 : 정상혁 기자
    장르 :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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