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검색목록 > 기사상세보기
타이틀

[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1985년 미·소 제네바 정상회담

    서민영·경기 함현고 역사 교사

    발행일 : 2021.06.02 / 특집 A27 면

    종이신문보기
    ▲ 종이신문보기

    오두막 벽난로 앞에서 "핵무기 감축하자" 뜻 모았어요

    오는 16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회담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어요. 미국은 지난해 러시아가 미국 대선에 개입하고 연방 기관들을 해킹한 의혹이 있다며 러시아 외교관을 미국에서 추방하는 등 러시아를 제재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이번 회담으로 양국 관계가 개선될지 주목되고 있습니다.

    특히 두 정상의 만남 장소로 정해진 제네바는 36년 전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회담이 열린 곳이기도 해서 큰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기도 해요. 1985년에 미국과 소련 정상은 어떤 이야기를 나눴을까요?

    자본주의·공산주의 이념 대립 심각했어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자본주의 진영과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공산주의 진영 간의 이념 대립, 즉 '냉전'이 시작됐어요. 중국의 국공 내전, 우리나라 6·25전쟁 등 동아시아에서뿐 아니라, 그리스 내전, 쿠바 미사일 위기, 베트남 전쟁 등 세계 여러 곳에서 두 진영의 이념 대립이 심화했죠. 심지어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대한 항의 표시로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 자본주의 진영 국가들이 참가하지 않았고, 이에 대한 보복으로 1984년 LA 올림픽에 공산권 국가들이 불참하기도 했어요. 당시 레이건은 '전략방위구상(SDI)' 실현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어요. 일명 '스타워즈 계획'이라고도 불렸던 이 구상은 인공위성 같은 장비를 이용해 적국의 핵미사일을 요격하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소련은 이미 막대한 국방 예산 때문에 재정적 부담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당시 소련 경제력은 미국의 3분의 1밖에 안 되는데 미국과 맞먹는 국방비를 지출하고 있었거든요. 이 때문에 소련은 어떻게든 미국의 '전략방위구상' 계획을 막으려고 했죠.

    레이건은 열렬한 반공주의자인 동시에 핵무기에도 적극적으로 반대한 인물이었어요. 즉 핵무기 감축에 대해선 상대국과 대화할 용의가 충분히 있었고 자신과 말이 잘 통할 만한 상대가 나오기를 바라고 있었죠. 그리고 마침내 1985년 3월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공산당 서기장으로 취임하면서 변화가 시작됐습니다.

    고르바초프는 취임 당시 54세로 스탈린(1879~1953, 43세 집권) 이후 최연소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었어요. 그는 강력한 공산주의자이면서도 소련 체제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그러려면 무엇보다 국방비 부담을 줄여야 하고 서방과도 좀 더 평화적이고 협력적인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도 그를 만난 후 "이 사람과는 이야기가 통한다.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할 정도로 전향적인 사람이었어요.

    처음 레이건은 고르바초프에게 회담을 제의하며 미국 워싱턴으로 초청했지만, 소련은 미국이 아닌 유럽 어딘가에서 만나고 싶어 했어요. 그래서 오래전부터 중립국을 유지하여 다른 곳보다 갈등이나 분쟁 당사자가 만나 협상을 벌이기에 비교적 부담이 덜했던 스위스로 최종 결정된 것이죠.

    "왜 코트 안 입나" "안은 따뜻" 카메라 앞 대화

    1985년 11월 19일, 세계 각국 기자 3000여 명이 몰려 취재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제네바에서 두 정상이 만났습니다. 레이건이 회담장에 먼저 도착해 있다가 늦게 도착한 고르바초프를 맞이하러 나왔는데 추운 날씨에도 코트를 입지 않은 레이건을 본 고르바초프는 "이런 날씨에 왜 코트를 입지 않았나"라고 물었어요. 이에 레이건은 "안은 따뜻하다"고 대답하며 고르바초프의 팔을 가볍게 잡고 안으로 안내했어요. 일각에선 코트를 입지 않은 74세 레이건 대통령이 54세 고르바초프 서기장보다 젊어보였고 강한 미국을 보여줬다는 분석도 있었어요. 계획상으로는 정상회담장에서 15분 정도만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고 각국 참모들이 참여한 확대 회담에서 본격적으로 논의하려 했지만, 두 사람은 마주 앉아 한 시간이나 대화했습니다. 이후 핵무기 감축 등 중요한 문제에 관해 회담이 이뤄졌는데, 좀처럼 합의가 되지 않고 분위기도 격앙됐어요. 이때 레이건이 고르바초프에게 다가가 "잠시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대화하자"고 제안했고, 고르바초프는 화답하며 통역만 대동한 채 나갔어요. 두 정상은 작은 오두막으로 가 벽난로 앞에 편한 자세로 앉아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눴는데, 이 장면은 사진에 찍혀 전 세계적으로 큰 이슈가 됐어요.

    그렇게 사흘 동안 진행된 제네바 정상회담은 '평화 정착과 군축 노력'을 합의하며 종료되었어요. '핵무기 50% 감축 원칙' 등에 양측의 입장이 일치한다고 밝히고 쌍방이 핵무기 감축 협상을 성의 있게 해나가겠다는 약속을 재확인한 것인데, 당시에는 '구체적인 핵무기 감축안이 담겨 있지 않아 큰 소득이 없는 회담'이라는 평가가 많았어요. 그런데 이 회담에서 레이건은 고르바초프에게 차기 회담을 제안하여 이후로도 두 사람은 세 번 더 만났습니다.

    냉전 종식 이뤄낸 네 번의 만남

    두 번째 회담은 1986년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열렸어요. 사실 이때도 전략방위구상 문제로 회담은 갈등만 남긴 채 끝났어요. 하지만 이후 두 정상은 회담이 결렬된 것을 반성하고 상대방 입장을 이해하고자 했어요.

    특히 핵무기의 위험성을 인식해 1987년 워싱턴에서 이뤄진 세 번째 만남에서는 사거리 500~5500㎞인 중단거리 탄도 및 순항미사일의 생산·실험·배치를 전면 금지한다는 내용의 '중거리핵전력조약'에 서명했어요. 마침내 1989년 12월 3일, 레이건 뒤를 이어 미국 대통령이 된 조지 부시와 고르바초프는 몰타에서 만나 냉전 종식을 공식 선언했지요. 1985년 제네바 회담은 냉전 종식을 향한 전환점이자 두 정상의 임기 동안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중요한 시작점이었습니다.
    기고자 : 서민영·경기 함현고 역사 교사
    장르 : 고정물
    본문자수 : 2872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
    인쇄 라인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