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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에 편지쓰고 8일 뒤 전사한 미군, 80년 만에 귀향

    정지섭 기자

    발행일 : 2021.06.04 / 사람 A23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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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1년 진주만서 복무했던 해군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당신이랑 우리 아기가 점점 더 보고 싶어. 이제 다섯 달하고 19일이 지나면 만날 수 있겠지?" 1941년 11월 29일 진주만에서 임무 수행 중이던 미 해군 USS 오클라호마함에 탑승한 보일러병 윌리엄 유진 블랜처드(24·작은 사진)가 아내에게 쓴 편지 첫머리다.

    그로부터 8일 뒤 오클라호마함은 진주만 공습을 개시한 일본군의 기습 공격에 침몰했다. 블랜처드를 포함한 승조원 429명은 미처 탈출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편지 발신인이 80년 만에 공식 제대한다. 'USS 오클라호마 프로젝트'를 통해 유해가 수습된 것이다. 'USS 오클라호마 프로젝트'는 2015년부터 미 국방부 산하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DPAA)이 첨단 기법으로 오클라호마함 희생자 신원을 확인하고 가족 품에 돌려보내온 '작전'이다. 블랜처드를 포함해 실종자로 처리된 338명이 뒤늦게 귀향했고 오는 7일 종료 행사가 열린다. 블랜처드 유해는 그가 '우리 아기'라며 보고 싶어 하던 아들 빌(80)이 맞는다. 애틀랜타 저널 컨스티튜션과 아이다호 스테이트맨 등 미 언론들이 이 가족의 80년 만의 해후 소식을 전했다.

    블랜처드는 고교를 중퇴하고 아버지 대장간 일을 돕다 19세에 입대해 오클라호마함 보일러병이 됐다. 오클라호마함은 진주만에 오기 앞서 워싱턴주 브레머튼에 기항했다. 블랜처드는 그곳에서 네 살 연하 소녀 로라 앤과 사랑에 빠졌다. 1940년 6월 17일 둘은 결혼했고 아들 빌이 태어났다. 아들이 생후 6개월이 됐을 때 일본군의 기습으로 오클라호마함은 좌초됐다. 생존자는 32명이었다. 사망자 429명 시신은 1944년 6월까지 단계적으로 인양돼 임시 매장됐다가 1947년 하와이 스코필드 기지 신원확인센터로 옮겨졌다. 하지만 신원 확인이 불가능할 정도로 훼손 상태가 심각해 호놀룰루 국립묘지의 46개 지점에 분산 안장됐고, 이들을 '실종자'로 표기했다.

    로라는 재혼 후에도 블랜처드를 잊지 않았다. 그가 쓴 편지를 차곡차곡 담아 초콜릿 상자에 보관했고, 집 한쪽에 블랜처드의 사진과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서명한 위로 서한을 담은 액자를 걸어 놓았다. 블랜처드 손때가 묻은 재떨이와 램프도 간직했다. 진주만 공습 희생자 행사에도 꾸준히 참석했다. 1987년 로라는 오클라호마함 생존 수병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편지에 블랜처드의 마지막 순간이 기록돼있었다. 어뢰 공격을 받은 군함이 뒤집혀 가라앉으면서 10여명의 승조원이 갇혔고, 물이 급격하게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때 블랜처드가 반복해서 기도했다. "내가 없으면 우리 아내랑 아이는 어떻게 될까. 하나님 그들을 살펴주시옵소서." 그게 마지막 모습이었다. 로라는 2007년 세상을 떠났다.

    생존 승조원들은 꾸준히 미국 정치권에 "신원 감식 작업을 재개해달라"고 요청했다. 유해 감식 기술이 발달한 2003년, DPAA가 시험 수습한 유해에서 실종자 5명 신원이 확인되면서 'USS 오클라호마 프로젝트'가 본격 준비됐다. 실종자 유해를 재발굴해 네브래스카주 DPAA 감식 시설로 보내 유족들로부터 제공받은 DNA와 대조하는 과정을 통해 지난 6년간 338명의 유해가 수습됐다. 블랜처드는 7일 아들이 사는 노스캐롤라이나주 엘리자베스 시티에 안장된다. 이날 'USS 오클라호마 프로젝트' 종료를 알리는 기념행사도 열린다. 신원 확인에 실패한 유해들을 다시 해군으로 '원대복귀'시키는 반환식이다. 이 유해들은 진주만 공습 80주기인 오는 12월에 재안장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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