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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視角] 경찰이 자초한 '경찰 불신'

    석남준 사회부 기자

    발행일 : 2021.06.04 / 여론/독자 A30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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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 출입하는 서울경찰청 정문을 지나면 큰 바위가 서있다. 거기엔 이런 글귀가 새겨져있다. '민주국가에서 경찰은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지키는 파수꾼입니다.' 청사 엘리베이터를 타면 모니터에서 길 잃은 치매 노인을 돌봐주고 가족을 찾아주는 경찰관, 위험천만하게 도로를 질주하는 범죄 차량을 추격해 기어이 잡고야 마는 경찰관의 영상이 나온다.

    하지만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기도 전에 휴대전화를 꺼내 뉴스와 댓글을 보면 '경찰 불신 사회'라는 현실로 돌아오게 된다. 요즘 경찰 관련 기사에는 글로 옮기기 민망할 정도로 경찰을 비난하는 댓글이 줄줄이 달린다. 주행속도를 시속 50㎞로 줄인 이른바 '안전속도 5030' 정책을 소개하는 기사에도 "사건 하나도 해결 못하면서 돈만 뜯어가려고 하네" 등의 비난 댓글이 달린다. 어느 총경급 경찰 간부는 "요즘 직원들이 모이면 이렇게 일할 맛 안 난 적이 없다고 한다"고 말했다.

    자정 넘어 퇴근하고 새벽 6시면 어김없이 출근하는 경찰 간부, 범인 잡기 위한 수사를 하느라 입술이 부르트고 하루가 다르게 얼굴이 꺼칠해지는 경찰관들을 많이 봤다. 이들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경찰 불신 사회는 경찰이 자초했다.

    생후 16개월 아이가 양부모 학대로 숨진 이른바 '정인이 사건'에서 경찰은 세 차례의 아동 학대 의심 신고가 들어왔지만, 사건을 내사 종결하거나 무혐의 처리했다.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의 택시 기사 폭행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폭행 장면이 담긴 블랙박스 영상을 보고도 "못 본 걸로 할게요"라며 묵살하고는 '영상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거짓 발표했다. 경찰은 "이 차관이 유력 인사인지 몰랐다"고 했지만, 진상 조사를 통해 이 전 차관이 공수처장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는 게 드러났다. 경찰이 사건을 수사하면서 기본을 지키지 않고 거짓말 릴레이까지 펼친 것이다.

    경찰에 대한 불신이 쌓일 대로 쌓인 상황에서 발생한 한강 대학생 사망 사건은 경찰을 고립시켰다. 경찰은 이례적으로 A4 용지 23장 분량의 수사 진행 상황을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사실상 실시간으로 수사 내용을 알리고 있지만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의 행렬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 경찰 간부는 "경찰이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곧이 안 믿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경찰 불신 사회는 치안 서비스의 고객인 국민들에게도 불행한 일이다. '민중의 지팡이' '안녕과 질서를 지키는 파수꾼'을 믿고 의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찰은 올해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의 수사 권한을 대폭 가져온 데다 2024년에는 국가정보원으로부터 대공 수사권까지 넘겨받아 '공룡 조직'이 된다. 김창룡 경찰청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존경과 사랑받는 경찰이 되자"고 했다. 그 바람은 과연 언제 이뤄질까.
    기고자 : 석남준 사회부 기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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