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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건 그 후…] 2010년 천안함 폭침, 아버지 잃은 김해나씨

    진천=강다은 기자

    발행일 : 2021.06.04 / 사회 A10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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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아빠에 그 딸 소리 듣고 싶어요, 꼭 해군 될 것"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폭침으로 아버지 김태석 해군 원사를 잃은 딸 해나(19)씨는 그때를 생생히 기억했다. 당시 천안함 침몰 12일 만에 천안함 함미(艦尾) 절단면 부근에서 발견된 김 원사의 주검이 흰 천에 덮여 구급대로 옮겨지자 해나씨는 아버지를 향해 뛰어갔다. 초등학교 2학년(8세)인 해나씨가 화상으로 일그러져 있었던 아버지 얼굴을 보겠다는 걸 해군 장병들이 막았고 해나씨는 "내 아빠를 내가 왜 못 보느냐"고 소리쳤다. 그로부터 11년이 지나 성인이 된 해나씨. 그는 "아버지 같은 해군 간부가 되겠다"며 올 3월 충북 진천에 있는 우석대 군사안보학과에 입학했다.

    천안함에서 함정 가스터빈 정비와 보수유지 임무를 담당했던 고(故) 김 원사는 단 한 건의 장비 사고도 없었던 모범 군인이었다. 지난 2일 기자와 만난 해나씨는 "아버지는 위험한 상황이 많은 배에서 잘 웃지도 않고 엄격하셨다고 들었다. 아버지를 닮겠다"고 했다. 그래서 지난 4월 해군·공군·해병대 예비장교후보생 1차 필기시험에 응시해 한번에 합격했다. 장교 후보생 시험을 최종 합격하고 대학을 졸업하면 그는 아버지 뒤를 이어 직업 군인의 길을 걷게 된다.

    해나씨는 지난 3월 '서해수호의 날'에 학과 제복을 입고 대전 현충원에 아버지를 만나러 갔다. 그는 "제복을 입고 아버지께 거수 경례를 드리니 '빨리 군인이 돼 자랑스러운 딸이 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정말 엉덩이가 찌그러질 정도로 열심히 장교후보생 시험공부를 했다"고도 했다.

    아버지 김 원사는 천안함 폭침 사건이 있기 전 '등굣길에 타라'며 해나씨에게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 줬다. "출동 갔다 돌아온 아버지와 공원에 나가 자전거 연습을 했는데 혼자서 곧잘 타게 됐을 무렵 '그 일'이 생겼습니다. 그 뒤 5년 가까이 자전거를 탈 수가 없었어요. 기울어지면 뒤에서 잡아주던 아버지가 없으니까요."

    김 원사는 해나·해강(18)·해봄(16), 세 딸을 두고 떠났다. 두 형과 처남이 모두 해군 출신인 '해군 가족'에서 자란 김 원사는 세 딸 중 한 명은 꼭 해군이 되길 바랐다고 한다.

    해나씨는 "천안함 폭침 사건을 바르게 기억해달라"고 여러 번 얘기했다. 그는 "어릴 땐 관심을 받는 것이 싫어 내 사진을 찍는 기자에게 가서 '모자이크 처리해달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며 "그런데 해가 갈수록 점점 사람들 기억 속에서 잊히고 '천안함 행사'도 보여주기식으로 끝나 아쉽다"고 했다.

    해나씨의 바람과 달리 천안함 폭침 11주기인 올해도 폭침 원인 등에 대한 가짜 뉴스와 음모론은 여전하다. 대통령 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가 천안함 사건에 대한 재조사를 결정했다가 비판을 받고 철회하는 일도 있었다. 해나씨는 "십 년 넘게 나오는 '좌초설' '자작극설'에 유가족들은 절망한다"며 "아빠도 '내가 이런 말 들으려고 출동을 나갔나' 하고 땅을 치고 후회할 것"이라고 했다.

    천안함 폭침 사건이 잊히지 않도록 하는 것도 해나씨가 해군이 되려는 이유다. "천안함 전사자의 딸인 제가 해군 간부가 되면 사람들이 한번 더 천안함 전사자 분들을 기억해주시지 않을까요? 제가 잘해서 꼭 '역시 그 아빠의 그 딸이다'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해나씨는 4일 대전현충원에 잠든 아버지를 찾을 예정이다. 이번에는 학과(學科) 친구들과 교수님과 함께다.
    기고자 : 진천=강다은 기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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