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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에 나랑 멍 때리러 갈까

    박돈규 기자

    발행일 : 2021.06.04 / 문화 A20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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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관 '불멍' 체험기

    타닥타닥 툭툭. 벌겋게 장작불이 탄다. 불씨까지 허공으로 날아간다. 눈앞에서 장작불이 이글거리지만 얼굴이 화끈거리지는 않는다. 캠핑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장작불은 스크린 속에 있다.

    지난 2일 오후 5시 30분 메가박스 코엑스점 10관. 그 시간에 영화 '불멍'<사진>을 선택한 관객은 아무도 없었다. 상영관을 통째로 대여한 사람이 영화와 일대일로 만나는 사치(?)에 대해 생각하는데 거대한 스크린에 떡하니 주인공이 등장했다. 장작불이다. 타닥타닥 툭툭. 장작들(약 30개)에 주어진 대사는 그뿐이다. 타닥타닥이 티딕티딕으로, 툭툭이 틱툭으로 들리기도 하는데 이것을 애드리브라 할 수는 없다.

    장작들은 부동자세로 꼼짝도 하지 않는다. 촬영감독이 영화를 날로 먹는지 카메라도 움직이지 않는다. 영화가 시작된 뒤 들어와도 앞 장면과 뒤 장면이 100% 예측 가능하다. 뜨거운 불을 부둥켜안고 숯으로 재로 변해가는 장작의 숙명에 대해 생각하는 관객은 없다. 아마도 장작 한 단 값밖에 안 들었을 제작비에 대해 상상하는 관객도 없다. 그저 이 영화를 고른 목적에 충실하게 불멍을 감상할 뿐이다. 이를테면 피정(避靜). 일상을 멈추고 영화관으로 도피해 '멍을 때리는' 것이다. 단순하기 짝이 없는 장작불 영상을 멍하니 보면서 우울이든 근심이든 머리를 청소한다.

    '불멍'은 지난달 19일부터 메가박스에 들어온 숏폼 콘텐츠다. 러닝타임은 30분. CGV도 오는 9일부터 명상할 수 있는 시공간을 판매한다. 극장형 명상 콘텐츠 '마인드 온앤오프'(1시간)는 아름다운 풍경을 담은 영상을 보여주며 잔잔한 음악과 효과음, 명상을 돕는 내레이션을 들려줄 예정이다. 신작이 별로 없는 영화관은 이렇게 '템플 스테이'라도 하면서 보릿고개를 넘을 참이다. 메가박스 관계자는 "코로나 사태로 지쳐 있는 국민에게 잠깐이나마 일상 속 휴식과 힐링을 주려고 기획했다"고 말했다.

    숏폼 콘텐츠는 2021년 극장가의 발명품이지만 관객은 극소수다. 전국 메가박스에서 '불멍'을 본 누적 관객은 500명도 안 된다. 그래도 관람 후기는 호의적이다. "장작 타는 소리가 멍 때리기에 아주 적합하다" "보는 동안 노곤해져서 꿀잠 자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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