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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 영향력 논란

류허(劉鶴) 중국 부총리가 지난 21일(한국 시각) "중국 내에서 비트코인 거래와 채굴을 모두 금지한다"고 발표하자 비트코인 가격은 이날 한때 13% 급락했다. 전 세계 비트코인 채굴량의 65%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이 강력한 규제 방침을 밝히자 투매(投賣) 현상이 빚어졌다. 이 현상은 실시간으로 다른 금융시장을 강타했다. 미국 뉴욕증시에선 나스닥과 S&P500 지수가 2시간여 만에 1%가량 떨어졌고, 미국 시카고 상품 선물거래소에서는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1시간 만에 0.6% 넘는 낙폭을 보였다.

최근 이처럼 가상화폐와 주식, 원유 등의 주요 위험 자산 가격이 일부 동조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가상화폐 가격이 출렁이면, 주식과 원유처럼 변동성이 높은 다른 자산들이 바로 영향을 받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전통 금융시장과 가상화폐 사이에 세워져 있던 두꺼운 '벽'에 조금씩 금이 가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면서, 변방(邊方)의 '투기적 자산'이던 가상화폐 시장이 이제 기존 금융시장의 안정성을 위협할 만큼 위험한 존재가 됐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불안' 공유하는 가상화폐·금융시장

가상화폐와 기존 금융시장의 상관성은 여러 측면에서 확인된다. 중국발 가상화폐 쇼크가 있던 날, 비트코인 가격이 급락세를 보이자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0.025%포인트 하락(채권 가격 상승)했고, 원화 대비 일본 엔화 가치도 같은 시간 0.3%가량 상승했다. 비트코인이 위험 자산 가격과 동행하고, 안전 자산과는 반대로 움직이는 '완벽한 연동'을 보인 것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가상화폐 시장이 기존 자본시장에도 즉각 영향을 줄 만큼 힘이 세졌다"고 평가했다.

가상화폐 시장의 규모를 생각하면 납득이 간다. 글로벌 코인 정보 서비스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2일 기준(한국 시각), 가상화폐의 시가총액은 1조6443억달러(약 1830조원)에 달한다. 주요 귀금속인 은(銀)의 시총(1조5210억달러)을 추월한 것으로, 국내 코스닥 시총(409조원)의 약 4.5배에 이른다. 4년 전인 2017년 가상화폐 시장의 시총은 10조원대에 불과했다. 영국 투자은행 바클레이스의 소렌 윌레만 연구원은 "비트코인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이 시장의 혼란이 유럽 회사채 시장까지 흔들고 있다"고 했다.

기존 금융시장과 가상화폐 시장을 연결하는 통로도 많아졌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올 들어 비트코인 선물(先物)을 '투자 적격 대상'에 올렸고, 골드만삭스·모건스탠리 등의 월가 대형 IB(투자은행)들은 가상화폐 관련 펀드나 파생상품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비트코인 ETF(상장지수펀드)와 공매도 상품도 등장했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인 브리지워터 설립자로, 비트코인 비관론자였던 레이 달리오가 비트코인 투자에 전격적으로 뛰어들기도 했다. 금융기관들이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하나의 자산으로 가상화폐를 취급하기 시작하면서, 가상화폐 가격의 출렁임이 포트폴리오 내 다른 자산의 '포지션(투자 비율)' 변화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게 됐다.

시장 전체의 유동성 수준이나 투자 심리를 파악하는 지표로 가상화폐 가격 흐름이 활용되기 시작한 것도 기존 금융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가상화폐 가격이 오르면 시장에 풀린 돈이 충분하고 위험 자산 선호 심리가 팽배한 것으로 판단하고, 가격이 많이 내려가면 그 반대로 해석하는 것이다. KB증권 김일혁 연구원은 "가상화폐 가격의 움직임은 당장의 수익 실현 가능성은 낮지만, 잠재력이 매우 큰 '하이퍼 성장주'의 가격과도 연관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상당수 개인 투자자가 가상화폐와 주식 투자를 병행하고 있기 때문에 가상화폐 급락 시 주식시장에 타격을 줄 만큼 상관관계가 커졌다는 해석도 나온다.

"금융시장 영향력 아직 제한적" 주장도

하지만 "가상화폐의 영향력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다"며 가상화폐의 금융시장에 대한 영향력을 제한적으로 보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가상화폐가 급성장하긴 했으나 전체로 보면 여전히 규모가 작고, 유입되는 자금의 성격도 전혀 다르다 보니 시장 내 다른 자산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칠 만한 대상으로 보기엔 아직 이르다는 주장이다. 한 증권사 고위 임원은 "실제로 가상화폐의 덩치가 많이 커졌다고 하지만, 1만개가 넘는 가상화폐 시총을 다 합해봐야 미국 애플의 시가총액(약 2310조원)에도 못 미친다"고 했다.

'투기'에 가까운 가상화폐 시장의 높은 변동성을 볼 때, 전통 '위험 자산'으로 분류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비트코인의 공포지수(VIX지수)는 130 수준으로, 지난해 3월 팬데믹(대유행)에 따른 사상 초유의 증시 폭락 사태 당시 기록한 수치(85)보다 50% 가까이 높다. 비트코인은 또 국제 유가의 등락을 2배로 추종하는 ETF(상장지수펀드)보다도 변동성이 큰 상태다. 한화투자증권 김일구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가상화폐와 주식시장은 자금 성격이 판이하게 다른데 단기 움직임이 비슷했다는 이유로 '연관성이 높다'고 하는 것은 근거가 부족한 주장"이라고 했다.

[그래픽] 주요 자산별 시가총액 / 가상화폐 시가총액 추이 기고자 : 김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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