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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A씨가 겪었다는 알코올 블랙아웃이 뭐길래

한강 반포공원에서 실종됐다 사망한 스무 살 청년 손정민씨. 그의 행적을 가장 잘 알 법한 사람은 밤새 술을 같이 마신 친구 A씨다. 손씨와 A씨는 지난 4월 25일 저녁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술을 들이켰다. 그들이 함께 마신 술은 청주 2병, 막걸리 3병, 640㎖짜리 소주 2병과 360㎖짜리 소주 2병으로 알려졌다. 손씨와 A씨가 똑같이 나눠 마셨다고 가정하면, 한 명당 260~290g에 해당하는 알코올을 마신 셈이 된다. 이는 국제보건기구(WHO)가 규정하는 고위험 음주(남성 기준 알코올 60g)의 4~5배에 해당하는 양이다.

A씨는 지난달 29일 변호인을 통해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당시 상황에 대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른바 '알코올에 따른 블랙아웃'이 왔다는 것이다. 우리 뇌에서 기억을 형성하고, 저장·유지하는 기관은 '해마'다. 해마는 알코올과 같은 약물이나 외부 충격, 열 등에 취약하다. 술을 많이 마시면 해마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기억을 잃게 된다. 이해국 가톨릭대 의대 교수는 "사람마다 몸이 취하는 속도와 정신이 취하는 속도가 다르다. 몸이 취하기 전 정신이 먼저 취해버리면, 몸은 멀쩡한데 그때 하는 행동을 기억 못할 수 있다. 이것이 블랙아웃"이라고 말했다.

일부 네티즌은 "아무리 술에 취해도 7시간 동안 있었던 일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주장한다. A씨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시간대는 정확히 저녁 11시 14분부터 다음 날 새벽 6시 10분까지다. 술이 깬 A씨가 집으로 돌아간 뒤, 손씨를 찾기 위해 다시 집을 나섰다가 완전히 귀가할 때까지 약 7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사건 당일 주변 CCTV 영상을 보면, A씨는 △비틀거리지 않고 한강 반포공원 토끼굴을 지나갔고 △2단으로 된 울타리를 침착하게 넘어 정확히 현장으로 이동하는 등 정상인과 크게 다르지 않게 행동했다. 이렇게 멀쩡하게 행동한 A씨가 아무것도 기억해내지 못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과음으로 인해 블랙아웃이 강하게 나타났다면 가능하다"고 말한다. 서울 강남의 모 신경정신과 병원 B 원장은 "술을 지나치게 많이 마시면 애초 보고 들은 것을 입력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렇게 되면 끄집어낼 기억이 아예 없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 지역 모 대학병원 신경정신과 C 교수도 "블랙아웃은 기억을 해내지 못하는 것이지, 그 시간 동안 비정상적 행동을 했음을 의미하진 않는다. 지극히 정상적인 행동을 했더라도 블랙아웃이 오면 사건 당시를 기억하지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정신과 전문의는 "알코올로 인한 블랙아웃이 오면, 행동은 정상적으로 했어도 뇌에는 아무것도 입력되지 않는다. 컴퓨터로 리포트를 집중해서 작성하는데, 키보드가 컴퓨터 본체와 연결되지 않아 아무런 결과물이 남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설명했다.

관련 학계에 따르면 블랙아웃으로 몇 시간까지 기억을 못 하는지에 대한 학문적 연구 결과는 없다고 한다. 다만 일부 전문가는 "A씨가 7시간 동안 완벽하게 블랙아웃이었다는 것은 다소 의아하다"고 말한다. 한 정신과 전문의는 "의학적으로 몇 시간 동안 블랙아웃이 있을 수 있는지에 대한 한계는 없지만, 7시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얘기는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 대학병원 교수도 "7시간 동안 블랙아웃이 됐다면, 집으로 돌아왔다가 부모와 함께 다시 손씨를 찾으러 나간 것까지 기억나지 않는다는 얘기인데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 손정민씨처럼 평소 물이 무서워 수영장도 못 갈 정도의 사람이 술에 취했을 때 물에 뛰어드는 식의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정신의학과 D 교수는 "사람에 따라 몸이 취하는 속도와 정신이 취하는 속도가 다른데, 정신은 깨 있지 않은데 몸은 깨 있다면 자제력을 잃어 사람을 때리고 물건을 부수는 행동을 하게 된다"고 했다. 또 다른 정신과 전문의는 "알코올이 우리 몸으로 들어가면 각종 중추의 기능을 억제하는데, 개인별로 알코올양에 따라 억제되는 정도와 부위가 다르다"며 "각성(覺醒) 중추가 일시적으로 기능해서 몸은 정상적으로 움직이더라도, 어디로 갈지, 안전한지 등을 판단하는 고위 중추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평소 전혀 하지 않았던 행위를 할 수도 있다. 손씨가 완전히 취해서 잠들어 있었다면 오히려 생존할 가능성이 있었다고 본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블랙아웃을 막으려면 술을 천천히 마셔야 한다고 조언했다. 가톨릭대 이해국 교수는 "적은 술이라도 빨리 마시면 블랙아웃이 올 수 있다. 같은 양의 술이라도 천천히 마셔야 한다"고 조언했다. 기고자 : 곽창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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