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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기자 칼럼] 創軍 영웅을 홀대하는 나라

    김기철 학술전문기자

    발행일 : 2021.06.05 / 여론/독자 A31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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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흔을 눈앞에 둔 진기연씨는 73년 전 그날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올렸다. 1948년 10월 19일 경북 영주에서 여수 수산학교로 전학 가기 위해 기차를 탔다. 부산에서 하룻밤 묵고 다음 날 여수행 기차를 탈 생각에 부풀었는데 '여순사건 발발' 대자보가 나붙었다. 열여섯 살 소년은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얼마 뒤 고향 집에 유골함이 도착했다. "형과 함께 살면서 학교 다닐 생각에 부풀었는데, 유골함으로 돌아온 형을 보고 기막혔다. 함안에는 유골도 없이 부러진 칫솔 한 자루뿐이었다." 휴대폰으로 흘러나온 목소리가 떨렸다. 여수에서 반란을 일으킨 14연대 반군에 희생된 진도연 중위가 그의 형이다. 1947년 4월 경비사관학교(육사 3기)를 졸업한 진 중위는 이듬해 5월 출범한 14연대에서 근무하던 중이었다. 그는 14연대 반란에 희생된 장교 21명 중 하나다.

    육사 6기생인 최석신 전 노르웨이 대사는 1948년 7월 말 임관 직후 14연대에 부임했다. "김왈영 대대장이 포병 교육을 받으러 가라길래 훈련은 질려서 사양했다. 포병은 수학 지식이 필수적이라며 설득해서 할 수 없이 따랐다." 반란 소식은 교육받던 진해에서 들었다. 두 달 남짓 교육을 마치고 광주 5여단 본부에 귀대 신고를 하러 갔다가 김왈영 대대장을 비롯한 14연대 장교 16명 유골과 맞닥뜨렸다. 최 전 대사는 "그때 여수에 남았다면, 대대장과 최후를 함께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14연대 반군은 남로당 무장 폭동으로 시작된 제주 4·3 사건을 진압하기 위해 출동하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동족 살상하는 제주도 출병 반대'란 그럴듯한 명분으로 병사들을 선동한 남로당 세력은 장교들을 보이는 족족 총으로 쏴 죽였다. 김왈영 대대장은 반란을 막으려 방에서 뛰쳐나오다 사살됐고, 제주도 출병 준비차 부두에 나갔던 김래수 중위는 연대장 명령에 따라 귀대하던 중 총에 맞았다. 대대장 3명 전원이 사살당한 14연대는 바로 해체됐다. 14연대 반란은 남로당 세력을 솎아내는 숙군(肅軍)으로 이어졌고 김일성 남침을 막는 디딤돌이 됐다. 전사자들이 흘린 피가 현대사의 기적으로 불리는 대한민국 탄생의 밑거름이 된 셈이다.

    14연대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민간인 피해자를 낳은 것은 사실이다. 억울하게 죽은 희생자를 위로하고 폭도 취급을 당한 생존 피해자에 대해 정부가 보상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 비극의 책임을 져야 할 남로당의 14연대 반란을 교과서에서 '무장 봉기'로 가르치고, '항쟁'으로 불러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건 제정신이 아니다. 여당 의원 152명이 발의한 '여순사건특별법'이 14연대 반란에 대해 어물쩍 넘어가는 것도 도리가 아니다. 그 틈을 비집고 일부에선 남로당과 14연대 반군을 동족 살상을 막고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해 '봉기'한 민주화운동가처럼 떠받든다.

    국립묘지에 묻힌 14연대 전사 장교 21명 중 6명은 '국가유공자' 예우도 못 받았다. 신생 대한민국의 국군 창설에 목숨 바친 영웅이지만, 유공자 신청을 해줄 유족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2016년 유족 신청이 없어도 국가보훈처가 유공자로 등록할 수 있도록 법을 바꿨지만, 김왈영 대대장을 비롯한 장교 6명은 여전히 정부의 관심 밖이다. 대통령은 6·25 남침 공로로 북한 훈장까지 받은 김원봉을 국군의 뿌리인 것처럼 치켜세웠고, 과거사위원장을 맡은 교수는 얼마 전 탈북 국군 포로를 면담하면서 중공군 포로 피해에 관심 있다는 엉뚱한 말을 했다. '정부는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모든 분들을 끝까지 기억하고 책임지겠다.' 며칠 전 아침 신문에 총리가 실은 호국보훈의 달 담화문이다. 우리는 정말 그런 정부 아래 살고 있나.
    기고자 : 김기철 학술전문기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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