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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매뉴얼은 유명무실… 일 터지면 '유별난 여군' 낙인·핍박

    원선우 기자

    발행일 : 2021.06.05 / 종합 A4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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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군·해군서도 성추행 극단선택

    성추행 피해를 호소했지만 군 당국의 묵살 탓에 지난달 극단 선택을 한 공군 여성 중사 사건 이전에도 육군·해군 여군(女軍)이 비슷한 일로 목숨을 끊었다. 그때마다 군은 각종 대책과 매뉴얼을 내놓으며 '재발 방지'를 강조했지만 결국 육·해·공군에서 모두 성추행 피해 여군이 극단 선택하는 사태를 막지 못했다. 일선 여군들은 "언제까지 우리가 죽어나가야 하느냐"고 하고 있다.

    2013년 육군 여군 대위가 직속상관(소령)에게 성추행 당한 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2015년 군 당국은 '성범죄 근절 종합대책'을 내놨다. 가해자는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 무조건 퇴출하고, 지휘관 등 직속상관과 인사·감찰·법무 등 관계자가 묵인·방관해도 처벌받도록 하는 내용이었다. 성희롱 기록을 전역할 때까지 남겨 진급에 불이익을 주고, 성인지 교육도 연 1회에서 4회로 늘렸다.

    그러나 2017년 해군에서 대령에게 성추행을 당한 여군 대위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에 국방부는 2018년 양성평등위원회를 만들고 성범죄특별대책전담팀을 구성했다. 성범죄 관련 매뉴얼을 마련하고 '가해자·피해자 분리' 원칙도 강화했다.

    하지만 이번 공군 A 중사 사태에선 이런 매뉴얼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성폭력 피해자 보호와 비밀 유지 의무 ▲가해자·피해자 우선 분리 ▲피해자의 신고 등 권리 행사를 방해하는 행위 금지 등을 명시한 '부대관리훈령' 내용이 완전히 무시됐다.

    일선 여군들은 성추행 관련 매뉴얼과 원칙이 '허울'뿐이라고 지적한다. 성추행 사건이 발생해도 군내 다수를 차지하는 남성 상급자들이 똘똘 뭉쳐 '그 사람도 가족이 있다' '너도 진급해야 하지 않겠냐'고 회유하면 당해낼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수차례 피해를 호소했던 공군 A 중사에게도 남성 상관들은 '가해자의 인생도 중요하다'며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한 여군 부사관은 "성추행을 당하고도 입을 닫지 않으면 선택지는 두 개뿐"이라며 "전역을 하거나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또 다른 여군 장교는 "군 생활을 하면서 성폭력을 겪지 않은 여군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여군들이 집단 내 소수자로서 불이익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여군 비율은 7.4%였다.

    피해를 호소하는 여군들을 '군인답지 않다' '여자라서 유별나다'고 낙인찍는 군의 남성 중심 문화도 문제로 지적된다. 문제가 터지면 피해자들에게 '품행 관리를 잘하라'고 눈치를 주는 경우가 대다수다. 성추행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면 가해자 처벌이나 부대 문화 개선보다는 '운이 없었다'고 하기 일쑤다.

    '2019년 군 성폭력 실태조사'엔 이런 실태가 잘 나타나 있다. 피해 경험 응답자 중 기관에 보고·신고한 비율은 32.7%였다. 보고하지 않은 응답자들은 미신고 사유로 '아무 조치도 취해질 것 같지 않았다'(44%)고 답했다. 피해자의 25%가 사건 축소·은폐 압박을 받았다. 성희롱을 경험한 남녀 간부 25%가 사건 축소 은폐 압박을 받았다. 비난과 따돌림 경험은 16%, 신고하지 말라는 압박은 14.5%였다. 정치권에선 "이번 기회에 군내 성범죄 실태를 전수(全數) 조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성학자인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은 4일 라디오에 출연, "2004년부터 군 성폭력과 조직 문화에 관한 연구를 해왔다"며 "그동안 군이 해온 것이 무엇인지, 개선된 것이 무엇인지 단 하나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고 했다. 이어 "어떻게 이렇게도 변하지 않는 조직이 있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며 "군은 기존의 문법을 완전히 벗어던지고 사건에 대한 수사와 제도 개선을 이뤄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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