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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은 선생님] [무대 위 인문학] 각색의 세계

    최여정 '이럴 때 연극' 저자

    발행일 : 2021.06.07 / 특집 A27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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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0년 전 셰익스피어 희극… 몸개그 발레로 대변신

    오는 15일부터 '예술의 전당'에서는 발레 공연 '말괄량이 길들이기'가 펼쳐져요.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셰익스피어(1564~1616)의 5대 희극 중 하나로 1590년쯤에 쓴 작품이에요. 430년이 지나서 한국에서도 공연하는 거죠. 사마천의 역사서 '사기(史記)'에 나오는 이야기 '조씨고아'는 우리나라에서 각색(脚色)해 연극으로 만들었는데 최근 중국에 진출하기도 했어요. 2100년 전 이야기를 연극용으로 고쳐 쓴 작품이죠. 조선 중기 판소리 '수궁가(水宮歌)'는 요즘'21세기 새로운 수궁가 탄생'이란 이름을 걸고 관객을 모으고 있답니다. 이런 고전(古典)들이 긴 세월을 거쳐 살아 숨 쉴 수 있는 밑바탕에는 바로 '각색'이란 마법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소설이 영화로, 영화가 연극으로

    '각색'은 어떤 작품을 다른 예술 형식으로 바꾸는 일을 가리켜요. 보통은 시나 소설, 희곡 등을 영화 시나리오로 바꿀 때 많이 쓰죠. 하지만 최근엔 공연 예술에서도 그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어요. 영화나 소설, 드라마를 연극, 뮤지컬, 오페라, 무용 등 다양한 공연 예술 장르로 바꾸는 시도가 활발합니다. 공연 장르 간에 각색도 자주 볼 수 있어요. 연극을 뮤지컬로, 뮤지컬을 오페라로 바꾸는 거예요. 그만큼 관객은 더욱 다양한 작품들을 즐길 수 있게 됐어요. 넓게는, 같은 예술 장르지만 새롭게 해석하는 것도 각색이라고 해요.

    그중에서도 오랜 시간 사랑받는 고전(古典)은 각색의 단골 대상이에요. 고전을 각색하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우선, 인물 관계나 갈등 내용은 그대로 두고 작품 배경을 현대로 바꿀 수 있어요. 또 주제만 가져와서 아예 새로운 인물을 만들어내기도 해요. 독일 오스터 마이어 감독이 2002년 만든 연극 '노라'가 대표적이에요. 이 작품은 노르웨이 극작가 헨리크 입센(1828~1906)이 1897년 발표한 희곡 '인형의 집'을 각색했어요. '인형의 집'은 노라라는 여성이 결혼 생활의 구속을 벗고 집을 떠난다는 내용인데, 21세기 연극에선 최신식 고급 아파트를 배경으로 현대 상류층 부부의 갈등이 부각되죠. 1933년 소설가 채만식 선생은 노라가 집을 떠난 이후를 상상해 조선 여성을 주인공으로 쓴 소설 '인형의 집을 나선 노라'를 조선일보에 연재하기도 했어요. 이렇게 각색하는 것은 시대 상황에 따라 고전을 해석하는 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이에요.

    우스꽝스러운 발레도 있다!

    셰익스피어 희극 중에서도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정말 다양한 예술 형식으로 각색됐어요. 영화로 여러 차례 만들어졌고, 최근엔 웹툰으로도 나왔죠. 또 수많은 버전의 연극, 오페라, 발레로 만들어졌어요.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이탈리아 파두아의 한 집안 이야기예요. 부자 밥티스타에게 두 딸이 있었는데 성격이 아주 정반대였죠. 말괄량이 큰딸 카테리나와 그녀를 현모양처로 길들이려는 페트루키오가 벌이는 결혼 소동이 줄거리랍니다.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발레 버전은 현재까지 공연하는 발레 레퍼토리 중 가장 오래된 작품이에요. 1789년에 초연했죠. 우리나라에는 2015년 국립발레단이 처음 선보였어요. 강수진 국립발레단장이 활동한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서 안무가 존 크랑코가 만든 것이죠.

    사실 코미디극인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발레'라는 장르로 만든 것 자체가 굉장히 재미있는 각색이에요. 발레는 '백조의 호수'나 '지젤' 등 비극이 대부분인데, 이 작품은 몇 안 되는 '희극 발레'랍니다. 원작의 희곡 특유 유머와 위트를 그대로 살렸어요. 우아한 동작만 할 것 같은 무용수들이 슬랩스틱(몸 개그) 동작을 하고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요. 꼭 광대처럼요.

    특히 이번에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할 작품에선 장애인을 희화한다는 논란이 있었던 장면을 원작자 안무가의 동의를 얻어 삭제한다고 해요. 시대에 맞춰 꾸준히 변해야 사람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예요.

    방대한 중국 고전을 2시간짜리 연극으로

    우리나라 고선웅 연출가가 중국의 고전 '조씨고아'를 연극으로 만든 작품 역시 성공적 각색 사례로 꼽혀요. 이 연극은 2016년 명동예술극장에서 초연한 후 같은 해 원작의 본고장 중국에 진출해 북경 국가화극원 대극장에서 공연했어요. '조씨고아'는 사마천의 '사기'에 수록된 짤막한 역사적 이야기예요. 이것을 13세기 후반 원나라 시대 작가 기군상이 '조씨고아'라는 소설로 썼고, 중국에서 연극, TV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로 각색됐어요. 기원전 6세기 조씨 가문 300명이 모두 사망한 후 유일하게 살아남은 조삭의 아들 조무가 가문을 다시 세운다는 이야기죠.

    우리 나라에서 각색한 연극 작품은 13세기 중국 작가의 작품을 21세기 한국 무대에 맞게 재창작해 냈다는 평가를 받았어요. 원작인 소설은 중국 사람들도 읽고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매우 길고 어렵다고 해요. 이런 내용을 2시간짜리 연극으로 사람들이 이해하고 즐길 수 있도록 쉽고 재미있게 만든 것이지요.

    토끼가 현대인에게 전하는 희망가

    작품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 새로운 주제를 부각하는 각색 방법도 있어요. 판소리 다섯 마당 중 하나인 '수궁가'를 창극(판소리에 연기를 더한 음악극)으로 만든 '귀토'<아래 사진>가 작품이 그런 방식을 썼어요. 이 작품은 국립극장에서 2일부터 공연하고 있어요.

    판소리 '수궁가'는 용왕님 병을 고치는 데 필요한 토끼 간(肝)을 구하려고 고군분투하는 거북이의 힘든 여정을 조명해요. 하지만 창극 '귀토'는 토끼가 겪는 여러 고난을 주목하죠. 토끼는 종전 판소리에선 바다에 가서 편하게 살 수 있다는 거북이의 꾐에 빠져 따라가요. 하지만 창극 '귀토'에선 고단한 육지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수궁으로 가는 캐릭터예요. 토끼는 꿈꾸던 수궁으로 떠나지만 죽을 고비만 넘기고 육지로 돌아와 삶의 소중함을 깨달아요. 이런 토끼가 늘 고단한 현대인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고난 속에서도 희망을 찾자는 긍정적 메시지도 전해주고요. 조선 시대 조상들이 즐긴 '수궁가'가 현대인들에게도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 것이 바로 각색의 힘이겠지요.
    기고자 : 최여정 '이럴 때 연극' 저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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