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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판결과 달리… 징용 피해자들 1심서 패소

    양은경 기자

    발행일 : 2021.06.08 / 종합 A1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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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원, 日기업 16곳 대상 손배소에 "한일협정으로 개인 소송 못해"

    강제징용 피해자와 유족 85명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 대해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라 소송을 낼 권한이 없다"는 1심 판결이 7일 나왔다.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징용 피해자들에게 국내 법원 소송을 통한 배상청구권을 인정했던 것과 정반대로 판단한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재판장 김양호)는 이날 피해자 송모씨 등 85명이 일본제철·닛산화학·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기업 16곳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을 각하(却下)했다.

    각하는 소송이 요건을 갖추지 못해 본 재판에 들어가지 않고 소송을 끝내는 결정으로 사실상 패소 판결이다.

    재판부는 "대한민국 국민이 일본이나 일본 국민에 대해 보유한 개인 청구권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의해 소멸되거나 포기됐다고 볼 수 없지만, 소송으로 이를 행사하는 것은 제한된다"고 밝혔다.

    또 "(피해자가 승소해) 강제 집행까지 마칠 경우의 국제적 역효과까지 고려하면 강제집행은 국가의 안전 보장과 질서 유지라는 헌법상의 대원칙을 침해하는 것으로 권리 남용"이라고 했다.

    피해자 측 강길 변호사는 "기존 대법원 판례와 정반대로 매우 부당하다"며 항소할 뜻을 밝혔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도 "국가적 이익을 앞세워 피해자들의 권리를 부정했다"고 했다. 반면 주진열 부산대 로스쿨 교수는 "국제법적으로 아주 타당한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이날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558호 법정에서 민사 34부 김양호 부장판사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및 유족이 일본 기업들을 상대로 낸 손배소를 "각하한다"고 선고하자 피해자 측이 있던 방청석이 술렁였다. 다른 법정에서 이 재판 중계를 보고 있던 한일 취재진과 일본 기업 측 대리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일본 기업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한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살아있는 만큼 이날 각하 결정을 예상한 이는 거의 없었다.

    이날 판결을 두고 법원 내부에서는 "애당초 대법원 판결이 무리였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한 부장판사는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국제 관계를 고려하지 않은, 다분히 국민들의 대일(對日) 감정을 의식한 판결이었다"며 "뒤늦게 한일 관계 경색을 풀어 보려는 현 정부에도 부담이 돼 버렸다"고 했다. 또 다른 중견 판사는 "'김명수 대법원'이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거치지 않고 성급하게 선고하는 바람에 지금과 같은 법원 내부의 혼선이 초래된 것"이라고 했다.

    서울중앙지법의 판결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이 징용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을 허용하느냐를 놓고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과 결정적으로 엇갈린다. 청구권 협정을 통해 한국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벌인 침략·범법 행위에 대해 '경제협력자금'이란 이름으로 '무상 3억달러, 장기 저리의 정부 차관 2억달러' 등을 받았다.

    여기엔 징용 피해에 대한 배상금도 포괄적으로 포함됐다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고(故) 여운택씨 등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11대2로 "여씨 등에게 각 1억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당시 대법원은 "한일 청구권 협정은 양국 간 재정적·민사적 채권, 채무 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며 "일본이 식민 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피해 배상을 부인했기 때문에 피해자 개인의 위자료 청구권이 협정에 포함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에 따라 현재 일본제철의 한국 내 자산을 대상으로 한 강제집행 절차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이날 중앙지법 재판부는 한일 청구권 협정 문안을 거론하며 "개인청구권이 완전하게 소멸된 것은 아니더라도 대한민국 국민이 일본 국민을 상대로 소송으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제한된다"고 해석했다.

    재판부는 또한 "비엔나 협정 27조에 따라 국내적 사정이나 해석에도 불구하고 조약의 효력은 유지된다"고도 했다. 비엔나 협정 27조는 '어느 당사자도 조약의 불이행에 대한 정당화의 방법으로 그 국내법 규정을 원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대법원 판결은 징용의 불법성을 전제로 하는데 이는 국내법적 해석에 불과하다"고 했다. 한 법조인은 "대법원이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 조약(한일 청구권 협정)을 부정하는 우(愚)를 범했다는 지적인 셈"이라고 했다.

    재판부는 대법원 판결로 인해 한미 동맹 관계까지 훼손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일본이 제소해) 국제사법재판소(ICJ)가 한국이 청구권 협정을 위반했다고 판단하면 대한민국의 위신이 바닥으로 추락하며 대표적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일본과의 관계가 훼손되고, 이는 결국 한미 동맹으로 우리의 안보와 직결된 미국과의 관계 훼손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이번 판결은 10일 선고 예정이었다가 앞당겨졌다. 재판부는 "법정 평온과 안정 등 제반 사정을 고려한 것으로, 절차상 위법하지 않다"고 했다. 이날 외교부는 "일본 측과 관련 협의를 지속할 것"이라고 했고, 일본 가토 가쓰노부 관방장관은 "한국 측의 구체적인 제안을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표] 법원 판단이 엇갈린 한·일 청구권 협정 내용
    기고자 : 양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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