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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칼럼 The Column] 병사의 귀향, 그리고 국가의 영혼

    김영수 영남대 교수·정치학

    발행일 : 2021.06.08 / 여론/독자 A34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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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라크에 파병된 미 해병대원 챈스 펠프스(Chance R Phelps) 일병은 2004년 4월 고향에 돌아왔다. 이라크에서 독일로, 대서양 건너 미국, 그리고 와이오밍주 듀보이스에 이르는 긴 여정이었다. 운명의 그날, 챈스는 호송 임무 중 머리에 치명적 총상을 입고 전사했다. 19세의 꽃다운 나이였지만, 군인으로서 그의 죽음은 특별하지 않았다. 전장에서는 어쨌든 누군가 죽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9년 '챈스 일병의 귀환(Taking Chance)'이라는 홈 무비가 제작되었다. 챈스의 유해가 고향에 이송되는 과정을 다큐멘터리처럼 담담하게 그렸다. 전쟁 영화지만, 총 쏘는 장면 하나 없다. 그러나 눈물이 절로 흐른다.

    이 영화는 전쟁 자체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 하지만 정치학자의 눈에 이 영화는 특별한 점이 있다. 미국이 국가의 영혼을 어떻게 창조하고, 또 어떻게 그것을 존엄하고 고결하게 만드는지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모든 국가는 저마다의 영혼을 가지고 있지만, 저절로 존엄하거나 고결해지지는 않는다. 인상적인 것은 미국민이 이 일에 스스로, 그리고 자연스럽게 참여한다는 사실이다. 챈스 일병의 귀향 과정을 보자.

    챈스의 유해는 비행기를 두 번 타고, 다시 자동차로 달려 듀보이스에 도착했다. 비행기에 탈 때 기장과 공항 노무자들이 도열해 경례를 올렸다. 그런 근무 수칙이 있는 건 아니다. 스튜어디스는 가족에게 십자가 목걸이를 전했다. 착륙 전 기장의 안내에 따라 승객들은 모두 조용히 자리에 머물러, 유해를 에스코트하는 군인을 먼저 내리게 했다. 대형 트레일러 운전사는 챈스의 운구차를 보자 모자를 벗고, 라이트를 켜고, 앞에서 길을 인도했다. 모든 차들이 운구차를 앞지르지 않고 전조등을 켠 채 뒤따랐다. 콜로라도의 광활한 대지와 하늘을 배경으로 작은 추모 행렬이 만들어졌다. 챈스는 가족과 친구, 주민, 참전 용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마을 공동묘지에서 영원한 안식을 찾았다. 누구도 울부짖지 않는다. 작은 흐느낌, 조용히 흘러내리는 눈물만이 유족의 슬픔을 보여준다. 강인한 절제, 그것은 죽음을 넘어선 사자(死者)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원래 미국의 시민 문화는 군대와 군인에 우호적이지 않았다. 미국민은 압도적으로 자유주의자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인이 사회주의, 공산주의, 자유주의 등 온갖 이념의 소유자인 것과 대조적이다. 자유주의는 군 또는 군사적인 것과 대립적이다. 자유주의는 인간 본성의 선을 믿으며, 그 핵심은 개인주의이다. 하지만 군은 인간의 내면에 악이 깃들어 있다고 보며, 본질적으로 집단주의이다. 실제로 1784년 미국 대륙회의는 상비군이 공화제 원칙에 어긋나고 전제정치의 도구로 악용된다는 데 동의하고, 독립전쟁을 치른 정규군을 해산시켰다.

    세계대전과 냉전을 거치며 미국민은 군에 대해 현실적 견해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자유주의의 영향력은 근본적이다. 자유주의의 이상적 군인상은 시민군(citizen-soldier)이다. 시민이 바로 군인이다. 전장에서의 죽음 또한 군인의 직업적 소명보다는 자유와 평화에 대한 시민의 헌신으로 본다. 그래서 그 사람을 영원히 잊지 않는 것, 그것이 동료 시민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챈스에 대한 시민들의 각별한 배려도 그 때문이다. 국가도 최상의 명예를 부여하고, 존엄성을 갖춰 예우한다. 군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도 먼저 거수경례를 한다. 미국민은 의무보다 마음으로부터 그렇게 한다. 토크빌이 말한 미국민의 '마음의 습관(habits of the heart)'이다. 전사자의 숭고함에 대한 그들의 기억은 유산이 되고, 마침내 국가의 영혼이 된다. 그렇게 애국심이라는 시민 종교가 탄생한다. 그 국가는 이제 '신성한 계약(covenant)'의 공동체로 승화했다. 이게 조국이다. 국가는 절로 조국이 되지 않는다.

    영혼 없는 국가는 지속될 수 없다. 대한민국의 영혼은 안녕한가. 천안함 음모론을 믿는 한 네티즌은 "천안함 생존 쓰레기들아. 어떻게 한 마리도 양심 선언하는 놈이 없냐"는 글을 올렸다. 그 생존자 16명이 엊그제 현충일에 천안함 폭침에 대한 대통령의 입장을 명확히 밝히라고 절규했다. 전 천안함 함장 최원일씨는 "냉대와 홀대는 익숙해졌다. 우리 사회가 천안함을 잊으려고 하는 것이 두렵다"고 고백했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전쟁의 위험성이 높은 나라다. 하지만 천안함조차 조롱받고 망각되는 이런 나라에서 자유와 평화가 온전할 수 있을까? 나라를 위해 몸 바친 한 명의 병사를 돌보는 것은 한 나라를 세우는 것과 같다. 산 옆 외딴 골짜기에 혼자 누운 국군이여, "당신의 희생에 감사드립니다(Thank you for your service)."
    기고자 : 김영수 영남대 교수·정치학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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