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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을 수 없어도 손으로 쓸 수 있기에 매일 하루 3시간씩 책상 앞에 앉았다"

    이기문 기자

    발행일 : 2021.06.09 / 사람 A23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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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반신마비 소설가 황시운, 사고 10년 만에 첫 소설집 펴내

    소설가 황시운(45·사진)의 집필실은 경기 군포시에 있는 그의 자택 방인데, 책상만 놓여 있었다. 휠체어에 앉아 글을 쓰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2011년 5월 다리에서 추락하는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다. 그로부터 10년 지나 최근 소설책 '그래도, 아직은 봄밤'(교유서가)을 펴냈다. 그의 첫 소설집이다.

    10년 전 문단의 기대를 받는 젊은 소설가였다. 2007년 등단해 추락 사고를 당하기 직전에 소설 '컴백홈'으로 창비장편소설상을 받았다. "이제 내 소설을 실을 지면을 얻을 수 있겠다 싶어 꿈같이 행복했다."

    수상 작가들이 으레 하는 출판기념회를 서울에서 열기 이틀 전, 경남 하동군 박경리문학관 근처 다리에서 추락했다. 문인과 화가들에게 무료로 작업실을 빌려주는 프로그램에 참여해 석 달 동안 글을 쓰던 중이었다. 보름달이 뜬 봄밤에 다른 예술가 예닐곱 명과 달구경을 하러 문학관 인근의 산에 올랐다. 마을로 돌아오는 길에 다리를 건너다 발을 헛디뎌 개울로 떨어졌다. "사느냐 죽느냐가 문제였다. '살 수 있다'는 의사의 말을 들은 며칠 후 '다신 일어설 수 없다'란 말을 들었지만." 병원에서 2년 지내고 집으로 왔다. 하반신마비는 단순히 못 걷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다. 통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매일 수십 종의 진통제를 삼켜야 했다. 마약성 진통제는 기억력과 집중력을 약화시켰다. 비마약성 진통제로 처방을 돌렸다. 고통을 감내하는 대가로 글을 쓸 수 있었다.

    소설가로서 재활을 위해 쓰든 못 쓰든 하루에 3시간 책상 앞에 앉았다. 한 달 만에 쓰던 단편소설 하나에 석 달이 걸렸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은 소설 가운데 9개를 추려 이번에 소설집을 냈다. 책에는 사지마비 남편을 둔 아내('매듭'), 사고로 형을 다치게 한 죄책감으로 엇나가는 동생('통증') 등 장애를 가진 사람과 주변 사람들의 내밀한 이야기와 심리가 등장한다. "장애는 죽을 때까지 안고 가야 하는 내 고유한 특질이 됐다. 다른 사람은 모르는 걸 내가 알고 있는 게 한 가지는 생겼다고 생각한다. 이것에 대해 쓰는 게 내가 할 일이다."

    그는 "손을 안 다쳐서 다행"이라고 했다. 책 끝머리에 붙은 '작가의 말'을 이렇게 끝냈다. '그래도 살아 있어서, 소설을 쓸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돌이킬 수 없이 낡아버렸다 해도, 아직은 봄밤이다.'
    기고자 : 이기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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