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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리스트] (18) 작가 곽대중의 꼰86* 시대착오 용어5

    곽대중

    발행일 : 2021.06.09 / 문화 A16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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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꼰대가 된 운동권… MZ세대는 이들을 ‘꼰86′이라 부른다

    문화는 선별과 여과의 오랜 역사입니다. 중요한 것은 누가 어떤 리스트를 제출하느냐는 것. 이번에는 전남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자영업자이자 작가로 활동 중인 곽대중씨가 씁니다. 운동권 출신 586들은 어쩌다 ‘우리는 괜찮아’(내로남불)식의 사고 구조를 갖게 되었을까. 운동권 시절 그들이 사용해온 용어를 통해 문화적 근원을 살펴봅니다.

    조국의 시간인지 떡국의 시간인지, 세상 또 시끄럽다. 사람들이 묻는다. “저 사람, 대체 왜 저러는 거요?” 우리나라 최고 지성들이 다닌다는 명문 국립대, 거기서도 가장 영명한 인재들이 모인다는 ‘법대’ 교수님의 높은 뜻을 무지렁이 백성이 어찌 알겠나. 다만, 이른바 ‘꼰86’들이 오늘날 왜 그런 사고와 행동 양식을 갖게 됐는지, 과거 그들이 사용했던 용어를 살펴보면 짐작되는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1. 조직 보위

    “안기부에 잡히면 어떻게 할 거냐?” 지하조직에 가입할 때 선배가 물었다. “혀를 깨물든, 벽에 머리를 처박든 죽음으로 맞서겠습니다.” 선배가 죽긴 뭘 죽어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냥 ‘아니다’라고 잡아떼기만 해.” 그것을 ‘조직 보위’라고 했다. ‘법정 투쟁’이라고도 했다. 명백한 증거를 제시해도 모른다, 본 적 없다, 결코 아니다, 무조건 잡아떼라고 했다. 절대 ‘나는 무슨 주의자요!’라는 식의 허튼짓은 마라. 얼른 빵(감옥) 살고 나와서 다시 싸울 생각만 해라.

    압수수색으로 자기 집 벽장에서 북한 원전과 문건이 한 보따리 발각된 친구가 있었다. 수사관이 어디서 구했냐고 물으니 “길에서 주웠다”고 대답했다. 문서 파일이 들어있는 플로피 디스크를 들이대자 역시 “길에서 주웠다”고 우겼다. 그 문서를 컴퓨터로 작업한 흔적을 제시하자 “그냥 저절로 입력된 것 같다”고 했다나. 요즘 어디서 많이 보는 풍경이다.

    그런 것을 ‘나를 위한 거짓말’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오롯이 조직을 지키는 일, ‘모두’를 위한 일이라 여겼다. 그러니 거짓말이란 자각 자체가 없었다. 지우고 없애고 둘러대고 증거를 인멸하는 일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성스러운 행위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조직’이라는 이름 앞에, ‘대의’라는 명분 아래, 만사가 합리화됐다. 성범죄도 덮고, 절도와 횡령도 쉬쉬하고, 심지어 살인까지 알리바이 짜맞춰 덮으려 했다(한총련 이석 폭행치사 사건 등). 일말의 반성이나 후회는 없었다. 우리는 ‘고난받는 메시아’니까. 대의를 위해서라면! 개인의 욕망을 ‘역사와 민중’이라는 용어로 슬그머니 치환하는 후안무치의 습관은 오늘도 면면히 이어오는 중이다.

    2. PT

    요즘 20대에게 PT는 대체로 프레젠테이션의 줄인 말로 통한다. 혹은 퍼스널 트레이닝이거나. 1980년대 운동권에서 PT는 프롤레타리아의 줄인 말이었다. BG는 (백그라운드가 아니라) 부르주아지, 가투는 가두 투쟁, 꽃병은 화염병, 유인물은 P(페이퍼), 대자보는 자보, 중앙집행위원회는 중집….

    축약어나 은어가 많았다. 효율성 때문에 그러는 경우도 있었지만, 보안을 지킨다며 그러는 경우가 있었고, 어쩌면 거기에는 ‘우리끼리만’ 통하는 용어를 통해 동질감을 확인하는 의미 또한 끼어있었던 것 같다.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는 ‘신식국독자’라고 했는데, 그러면서 뭔가 대단한 이론을 향유하고 있다는 지적 허영심마저 있었다.

    ‘택’은 영어에서 전술이나 병법을 뜻하는 ‘택틱스(tactics)’의 앞 자를 땄다. 가투를 위해 어디에 집결한다거나, 어떤 방식으로 이동한다거나, 어디를 습격하는 계획 같을 것을 ‘택 짠다’고 표현했다. 그런 일사불란함을 자랑으로 여겼고, 오월대 녹두대 같은 조직을 만들어 중대장, 소대장 하는 군대식 직위를 부여했다. 그것을 또 ‘사수대’라고 불렀다. 이것도 요즘 어디서 많이 보는 풍경 아닌가. ‘총수’가 “밭 갈아라” 좌표 찍어 지령 내리면 우르르 몰려가 댓글 달고, 전화번호 공유하며 문자 폭탄 날리고. 여전히 공격이 아니라 사수(死守)라 여긴다.

    3. 보급 투쟁

    조직 자금을 마련하는 일을 보급 투쟁이라 불렀다. 줄여서 ‘보투’. 학교 앞 식당에서 김치를 잔뜩 훔친 친구가 있었다. 교내에 숙식하며 은신하는 수배자들에게 먹이려 그랬다며 그는 ‘보투’의 명분을 내세웠는데, “인민의 것은 바늘 하나, 실 한 오라기라도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말로 비판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것은 반대로 “인민의 것이 아니라면 건드려도 된다”는 뜻이렷다.

    실제로 시위용 쇠파이프(줄여 ‘파이’라고 불렀다)를 만들기 위해 어느 공사장에서 철근을 대량으로 훔친 적이 있는데, 그건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다. ‘가진 놈들의 것’을 빼앗는 일이니까. ‘해방’된 조국을 위해 우리가 잠시 ‘빌리는’ 행위 정도로 여겼던 것 같다.

    요즘 그들은 정권을 잡는 일도 보급 투쟁의 일환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정권을 잡아야 수많은 권력형 고급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적 지혜로 깨달았으니까. 하다못해 운동권 사돈이나 팔촌 인맥이라도 동원해야 공기업 감사든 대기업 사외이사 자리든 꿰찰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서울시에 그렇게 많은 시민단체와 협동조합이 생겨난 것도 그들 나름의 보투 아니었을까. 대기업을 공격하는 이유도 그래야 이리저리 ‘먹거리’가 생기니까 그런다.

    오늘도 ‘보급’을 위해 노력한다. 이제는 ‘인민의 것’(세금)까지 서슴없이 건드린다. 그렇게 보급으로 따낸 성과를 자식에게 물려주는 일에도 누구보다 열심이다. 그게 다 조국과 민족을 위한 것이니 일말의 죄책감이 있을 리 없다.

    4. BC문건

    북한에서 남한을 향해 송출하는 대남방송을 BC(Broadcast의 줄인 말)라 불렀다. 단파로 송출되는 라디오니까 아무나 들을 수 없으니 전담해 듣는 팀이 있었는데, 그들을 ‘BC소조’라고 했다. 방송 내용을 녹음했다가 그대로 옮겨 적은 문서는 ‘BC문건’이라 불렀다. 6월 1일 방송된 내용이 6월 3일이면 대학가 학생회실에 배포될 만큼 ‘신속성’을 자랑했다.

    한편으로 ‘정확성’도 따졌다. BC문건에는 ‘당면 투쟁지침’ 같은 것이 있었는데 북한에서 지시하다 보니 현실성이 떨어지는 내용이 많았다. 그것을 그대로 이행하는 것이 옳은지, 거를 것은 거르고 창조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맞는지를 놓고 정통과 이단으로 갈렸다.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이라는 단체가 있다. 김일성이 만들라고 지시해 만든 조직인데, 김일성이 갑자기 죽으면서 그 범민련을 어떻게 하라고 유언을 남기지 않아 범민련 해체 문제를 놓고 또 정통과 이단으로 갈라졌다. 당시 이단으로 찍혔던 문익환 목사는 그런 쟁투의 와중에 사망했다. 범민련은 아직 존재한다. 위수김동(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생전 명령이니까.

    어느 지하조직은 BC문건에 나오는 대로 김일성 탄신일 축하 유인물을 제작, 배포하는 것이 옳냐 그르냐를 놓고 논쟁을 벌였다. 결국 ‘현실적으로 맞지 않다’는 결정을 내렸는데, 이에 불복해 조직을 탈퇴했던 사람은 정치권을 거쳐 지금은 기업을 경영하고 있다. 이 글을 보고 ‘내 얘긴가?’ 하실 분들 많겠지?

    5. 해전사

    1980년대 운동권 필독서는 해전사(해방 전후사의 인식), 1990년대는 다현사(다시 쓰는 한국 현대사)였다. 주제는 똑같다. 우리나라는 미국의 완전한 식민지이고, 주한미군은 가혹한 점령군이며, 속히 이 굴종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내용이다. 역사를 ‘다시 쓴다’는 의식은, 우리가 정권을 잡으면 지나간 역사 정도는 우리 식으로 얼마든 고쳐 쓸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실제로 그들은 그렇게 하는 중이다. 그러면서 최근 미국이 준 백신에는 환호한다. 미국으로부터 ‘보투’에 성공했다고 여기는 것 아닐까. 참, 북한의 핵무기도 ‘보투’용이라 존중하며 다정히 응원한다. 남북이 보급으로 하나 됐다. 조국 통일 만세!

    운동권이 반미친북인 건 알겠는데 어쩌다 친중이 되었냐고 묻는 사람도 많다. 특별한 논리가 있겠나. 그냥 미국이 싫으니까 중국이 좋은 거다. 다만, 운동권 다수파였던 NL(민족해방) 계열을 폭발적으로 양산한 책 <강철서신>도 적잖은 영향을 미친 것 같다. <강철서신>은 중국 홍군(紅軍)을 모범적인 사례로 소개하며 시작한다. 숙영지에 도착하면 일단 마을 어른부터 찾아가 인사하고, 머무는 댁의 마당을 쓸고, 집안일 거들면서 민심을 얻는 데 주력했다고 공산당 군대를 칭송한 것이다. 이것이 중국에 대한 NL의 우호적 태도를 낳는데 적잖은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지금도 NL 출신들은 홍군의 후예들이 중국에서 그런 ‘반듯한’ 자세로 국가를 운영하는 줄 안다.

    역사는 참 아이러니하다. 정작 <강철서신>을 쓴 김영환씨는 전향해 북한 내부 민주화 운동 세력을 지원하겠다고 중국에서 비밀리에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안전부에서 고문까지 받으며 강제 구금되었고, 운동권에서도 얼치기 몽상가로 취급되었던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의 어느 하부 조직원은 같은 시각 부인과 함께 자녀 입시 서류 위조하고 타인 명의로 주식 거래하는 등 온갖 ‘잡범’ 짓을 다 하고 있었다. 그것이 들통나자 검찰개혁이라는 요설로 위장하고, 증거인멸과 묵비권으로 조직(?) 보위를 전개하였으며, ‘아내는 감옥에 가도 나는 갈 수 없다’는 대장부의 자세로 법정에서는 겁에 질려 말도 못하던 위인이 갑작스레 책을 통해 면류관 쓴 예수 행세를 한다. 인세 수입으로 ‘보투’하시려는 웅장한 뜻일 테다. 우리 조국 만세!

    곽대중씨는

    광주에서 태어나 자랐다. 고교 1학년이던 1989년 전교조의 영향으로 운동권이 되었고, 고2 때 NL 계열 지하조직에 가입했다. 나중에 전향해 1999년 반(反)한총련 계열로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을 지냈으며, 북한민주화네트워크 편집장, 데일리NK 논설실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자영업을 하면서 작가로 활동한다.

    ☞꼰86

    80년 학번, 60년대 태생을 흔히 86세대라 부른다. 그들이 30대였을 때는 386, 40대 때는 486이었다가 이젠 586, 686이 되었다. 요즘 2030들은 ‘꼰86’이라고도 부른단다. 운동권이나 정치권의 마지막 글자를 강하게 발음해 ‘?86’인 줄 알았는데 ‘꼰대’의 앞 글자를 따서 ‘꼰86’이라나. 운동권-정치권 86세대들이 자기 세대 전체에게 이토록 민폐를 끼치는 중이다. 이쯤 되면 자아도취가 아니라 ‘자기학대’급이 되어간다고 할까.

    기고자 : 곽대중
    장르 :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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