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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건 그 후…] 30년전 '개구리 소년' 사건, 아버지 우종우씨

    대구=김영준 기자

    발행일 : 2021.06.09 / 사회 A8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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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아들 앗아갔는지 쪽지로라도 알려줬으면… 그래야 저세상서 만나도 덜 미안하지"

    "누가, 왜 우리 아들 그렇게 만들었는지라도 알아야 편하게 눈을 감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저승 가서) 철원이 만나면 덜 미안하지요."

    벌써 30년이 지났다. 동네 아이들과 놀러 나간 둘째 아들 철원(당시 13세)이가 유골로 발견된 지도 이미 19년이 흘렀다. 실종 당시 마흔셋이었던 아버지 우종우(73)씨는 어느새 백발노인이 됐다. 그는 "집에 작은 쪽지 하나 남겨놔도 좋으니 아이들이 왜 세상을 떠나야 했는지 (범인이) 양심선언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비가 내리던 지난 3일 오후 우씨는 우산을 들고 아들 유골이 발견된 대구 달서구 와룡산 기슭을 찾았다. 등산로 입구엔 추모비가 세워져 있었다. 중간중간 멈춰 서 거친 숨을 몰아쉬던 그는 "몇 년 전만 해도 밥 먹듯 찾던 곳인데 나이가 들어 이젠 힘에 부친다"고 했다. 낙엽에 덮인 채 아이들 유골이 묻혀 있던 곳 옆으로는 어린아이들이 뛰놀 수 있는 작은 놀이터가 만들어져 있었다. 우씨는 "우리 아들도 초등학생이었는데, 여기서 노는 모습을 봤다면 얼마나 좋았겠느냐"고 했다.

    1991년 3월 26일 대구 달서구 성서초등학교에 다니던 우철원군과 조호연(당시 12세)·김영규(11)·박찬인(10)·김종식(9)군 등 다섯 어린이가 도롱뇽 알을 주우러 집을 나서 한꺼번에 사라진 이른바 '개구리 소년 사건'은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아이들은 11년 6개월이 지난 2002년 9월 와룡산 기슭에서 백골로 발견됐다. 부검 결과는 타살. 단일 사건으로는 사상 최대 규모인 35만명의 경찰과 군(軍)이 동원됐지만 실종 경위와 범인은 끝내 밝혀내지 못했다.

    아들이 사라진 후부터 우씨는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 하던 택시 운전도 그만두고 다른 아이들 부모와 함께 3년 넘게 아이들을 찾아 헤맸다. 트럭에 온통 아이들의 사진을 붙이고서 전국 방방곡곡을 누볐다. 아이들 행방의 작은 실마리라도 찾기 위해 강원도 산골부터 제주도까지 안 가본 곳이 없다고 했다.

    그렇다고 평생 그렇게 돌아다닐 순 없었다. 재활용 업체를 차려 남은 가족들을 건사했고, 주말이나 휴일이면 다시 철원이를 찾아 나섰다. 아이들 유골이 발견된 뒤로는 범인을 잡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국회와 청와대를 찾아다니며 공소시효를 늘려달라고 요구했고, 수시로 경찰을 찾아가 더 적극적인 수사를 재촉했다.

    "결국 공소시효마저 끝나 버리더라고요. 가슴을 치며 울었던 그날 밤이 잊히지 않아요." 2006년 3월 25일 자정을 기점으로 이 사건 공소시효 15년은 만료됐다. 이젠 범인을 잡아도 처벌할 수 없다. 몇 차례 재수사한다는 말만 있었을 뿐 경찰 수사는 흐지부지되어 갔다. 우씨는 "너무 분해 초동 수사 부실 책임을 지라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도 제기했지만 패소했다"고 했다.

    이때부터는 함께 슬픔을 나누던 다른 아이들 부모와도 교류가 뜸해졌다. 이따금 만나 소주잔을 기울이던 종식이 아버지는 아이들 유골도 못 본 채 세상을 떠났고, 알코올중독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못 하는 부모도 있다고 했다. 우씨는 "3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다 보니 이젠 웬만해선 아이들 이야기를 꺼내질 않는다"고 했다.

    올해 3월 부모들이 한자리에 다시 모였다. 30주기를 맞아 추모비가 세워지는 자리였다. 어머니 품에 다섯 아이가 안겨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추모비 앞면엔 사건 개요만 적혀 있을 뿐 아이들 이름은 없었다. 우씨는 "추모비 앞에 이름이 새겨져 있으면 사람들이 '왜 산에 갔느냐' '조심 좀 하지'라고 아이들 탓할 것 같았다"며 "아무 잘못 없는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편히 쉬길 바라는 마음에 이름을 뒷면에 새기자고 했다"고 말했다.

    철원이 유골은 부검 결과가 나온 직후인 2002년 겨울 낙동강에 뿌려졌다. 강물 따라 흘러가며 살아생전 못 봤던 세상을 많이 봤으면 하는 바람으로 우씨가 그렇게 결정했다고 한다. "이 사건을 국민이 어떻게 기억해줬으면 하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기억은 무슨. 30년간 전 국민에게 기억해달라, 찾아달라 떼쓰고 산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그냥 모두 자기 아이 잃어버리지 말고, 잃어버린 아이 있으면 나라가 금방 찾아주고, 그것만 잘됐으면 좋겠네."
    기고자 : 대구=김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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