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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세상의 중심이 아니다, 착각마라"

    이기문 기자

    발행일 : 2021.06.10 / 문화 A15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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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편 '완전한 행복' 정유정 인터뷰

    지난주 작가 정유정(55)은 서울 마포의 한 호텔방에 틀어박혀 사인펜을 움직였다. 에너지 음료에 의존한 채 2박 3일 동안 사인한 책이 무려 5000권. 작가의 친필 사인 양장본을 받을 수 있는 사전 출간 이벤트가 하루 만에 5000명을 돌파했고, 작가는 그 약속을 지키려 한숨도 자지 않았다고 했다.

    '스릴러의 여왕'이 장편 '완전한 행복'(은행나무)으로 2년 만에 돌아왔다. 독자들은 2만부를 예약하며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대표작인 '7년의 밤'(2011) '28'(2013) '종의 기원'(2016)까지 다시 베스트셀러 순위에 진입했다. 이번 신작은 초판만 10만부를 찍었다.

    주인공 유나가 생각하는 행복은 불행의 가능성을 하나씩 줄여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주변 인물들을 하나씩 소거한다. 살인 장면에 대한 묘사가 전혀 없는데, 읽는 이의 뒷덜미는 한없이 서늘하다. 524쪽에 달하는 책이 단숨에 넘어간다.

    ―지난 작품의 주인공이 사이코패스였다면, 이번엔 나르시시스트(자기도취형 인간)다.

    "사이코패스는 타고난 악인으로 타인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모든 사이코패스는 나르시시스트지만 더불어 반(反)사회적 성격 장애를 갖고 있다. 반면 자기애성 성격 장애인 나르시시스트는 사회에서 자주 마주치는 인간형이다. 유년기에 잘못된 육아 방식으로 길러진다. 이들을 설명하는 키워드는 수치심이다. 무안당하는 것, 잘못을 인정하는 것을 싫어한다. 수치심을 겪지 않으려 방어벽을 쌓고 주변 사람을 가스라이팅(심리 조작 지배)하며 착취하거나 잘못을 뒤집어씌운다. '내가 치질 걸린 것도 네 탓이야' 하면서. 자기가 차가운 자리에 앉았으면서."

    ―잘못된 육아 방식이란.

    "'너는 행복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고 세상의 중심이며, 너로 인해 세상이 변할 것'이란 식의 교육이다. 어느 순간 미디어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자기가 특별하다고 믿는 사람이 많아졌다. 작은 불편도 참지 못하고, 자신의 행복과 타인의 불행이 겹칠 때 자기만 생각한다. 사회적으로 집단화되면 독일의 게르만 인종주의와 다를 바가 뭔가. 인간은 특별하지 않다. 다만 고유할 뿐."

    ―그러는 본인은 자녀를 어떻게 키웠나.

    "완전한 방목. 외아들이 스물일곱 살 됐다. 감옥에 안 가는 방법만 가르쳐줬다. 엄마가 쓴 소설도 읽지 않는다. 읽기 싫으면 마는 거지. 소방관 남편과 소설가인 나, 아들 세 식구가 각자 인생을 산다."

    ―2019년 전 남편을 살해한 고유정 사건이 생각난다.

    "모티프를 얻었지만 소설이 망가질 것이 두려워 관련 기사를 일부러 보지 않았다. 플롯과 인물, 배경과 서사 모두 허구다."

    ―지난 작품들처럼 썼나.

    "생활은 같다. 오전 3시 기상해 30분 데스 메탈 음악을 들으며 커피와 함께 정신을 차린다. 소설 인물마다 테마곡을 부여해 듣는데 이번엔 불쌍한 남편 은호의 테마로 가수 김경호의 '비정'을 들었다. 그의 목소리엔 비련이 있다. 오전에 글 쓰고 오후에 고친다. 저녁 먹고 2시간 킥복싱과 헬스를 한다."

    작가의 옆엔 성인 남성 팔목 두께만 한 수백 쪽 취재 노트가 있었다. '미저리 분석' '인격 장애' '약물 분석' 등 주제별로 조사한 내용이 자필로 빼곡했다. 인격 장애 유형별로 차를 어떻게 주차하는지 연구한 논문 속 그림까지 붙여져 있었다. 그는 "보통 6개월 공부하고 1년 넘게 쓴다"고 했다. "소설에 등장한 바이칼 호수를 쓰려고 코로나 직전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3박 4일 달려갔다. 소설 속 영하 45도 날씨로 눈썹에 고드름이 맺히는 묘사나 개떼들에게 쫓기는 이야기 모두 경험한 일이다. 전남대 약리학 교수님 자문이 아니었으면 잘못된 약물로 인물을 죽일 뻔했다."

    ―작가가 생각하는 행복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앤다고 해서 완전한 행복을 얻을 수 있을까. 불행과 불운, 결핍을 받아들여야 행복도 의미가 있다. 행복만 좇으면 행복은 도망간다."
    기고자 : 이기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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