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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86) '철학'이라는 이름의 화장품

    박진배 뉴욕 FIT 교수·마이애미대 명예석좌교수

    발행일 : 2021.06.10 / 여론/독자 A31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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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로소피(philosophy)'라는 이름의 화장품. 1996년 캘리포니아에서 시작하여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성공의 배경에는 화장품의 기능이나 향을 최소화하고 사용자 본연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브랜드의 전략이 있다. 그러면서 오프라 윈프리와 같은 지식층 여성을 고객으로 끌어냈다. 단색의 용기 표면에는 글로 적힌 문구들이 물결처럼 잔잔하게 퍼져있다. 모든 단어를 소문자로만 표기한 점도 특이하다. 대문자가 없는 다소 어색한 배열은 문장을 쉽게 넘기지 않고 내용을 읽게 만들어준다. 삽입된 내용들은 재미있고 간결하다. 제품의 종류와 연결되는 철학적 문구들이다. 핸드크림의 경우 "네 인생은 네 손에 달려 있다", 아이크림의 경우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 메이크업 제품에는 "당신의 세계를 색상으로 꾸며라" 같은 식이다. 이처럼 '철학'과 '화장품'이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요소를 결합한 발상은 미니멀한 디자인을 통해 지적 가치를 배가시켰다.

    화장품 광고 모델을 사용하지 않는 필로소피는 자사의 여러 제품을 '마케팅 명예의 전당'에 등재시켰다. 그중 유명한 것은 '요리책(cookbook)'이라는 이름의 거품 비누다. 흥미로운 점은 바나나 브레드, 초콜릿 쿠키, 오렌지 셔벗과 같은 음식의 레시피가 제품 표면에 적혀있고, 그 비누의 색을 제품과 일치시킨 점이다. 어린아이가 엄마와 함께 목욕할 때 마치 다양한 요리를 만드는 것과 같은 재미를 부여한 것이다. 이 상품의 탄생 몇 년 후 또다시 마케팅 세계를 놀라게 한 제품이 출시되었다. '신부 입장(here comes the bride)'이라는 신혼여행용 기초 화장품 세트다〈사진〉. 표면에는 그 옛날 거품 비누로 목욕하며 놀던 소녀가 어느덧 성년이 되어 결혼을 한다는 이야기와 사진이 담겨있다. 탄생하면 하나의 생명을 가지고 성장하는 브랜드의 속성을 인생으로 은유한 스토리 마케팅이다.

    피부뿐 아니라 정신과 마음도 아름답게 만든다는 필로소피 화장품은 올해 25주년을 맞는다. 이 화장품을 사용하면서 표면의 문구를 보고 매일 철학적 사고를 하는 건 아니지만, 잠깐 멈춰 생각하며 긍정적 마음을 갖는 것은 의미가 있다. 철학의 기본은 지혜를 사랑하는 태도다.
    기고자 : 박진배 뉴욕 FIT 교수·마이애미대 명예석좌교수
    장르 :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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