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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탄 아버지 살고, 뒤쪽 탄 딸은 숨져… 좌석 위치가 생사 갈랐다

    광주광역시=김정엽 기자 광주광역시=서유근 기자 광주광역시=강우량 기자

    발행일 : 2021.06.11 / 기타 A2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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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光州 54번 버스의 참사, 평범한 이웃들이 당했다

    "예쁜 내 딸, 어디로 가부렀는가…."

    10일 오전 11시 10분, 광주광역시 조선대병원 장례식장. 9일 건물 붕괴 참사로 숨진 김모(여·31)씨의 유족들이 영정 사진을 보며 오열했다. 어머니 이모(67)씨는 "내가 갔어야 하는디. 내가…"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김씨는 아버지(70)와 함께 54번 버스를 타고, 요양원에서 암 투병 중이던 어머니 이씨를 만나러 가던 중이었다. 이씨는 3개월 전 갑상선암 판정을 받았다. 딸 김씨는 아버지와 거의 매일같이 엄마를 찾았다고 한다. 이날도 버스에서 전화로 "곧 도착할 것 같아"라고 상냥하게 말했던 딸은, 전화를 끊은 지 10분도 되지 않아 무너진 건물 잔해 속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같은 버스에 탑승했지만, 뒷자리에 앉은 딸과 달리 아버지는 건물 잔해의 충격 피해가 적었던 앞쪽 자리에 앉아 가까스로 화를 피했다. 그는 아직 딸의 죽음을 모른다. 인근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 중인 김씨는 "막내딸 어딨는가"라며 딸의 안부를 계속 묻고 있다고 한다. 가족들은 "혹시 충격을 받아 상태가 나빠질까 봐 딸 소식을 전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김씨 부부는 말바우시장에서 팥죽 장사를 하며 딸 다섯을 키운 '딸 부잣집'이었다. 숨진 김씨는 막내딸로, 광주의 한 대학을 졸업하고 최근 수의학과 편입을 준비해왔다고 한다. 김씨의 유족은 "독서실 다니면서 아르바이트해 생활비를 직접 벌어 쓰고, 틈틈이 부모님 장사도 돕던 착한 딸이었다"고 했다.

    이곳에서 2㎞ 남짓 떨어진 광주 기독병원 장례식장. 전날 사고로 숨진 이모(여·61)씨 빈소에선 판소리 자락과 함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고인의 남편 한승만(65)씨는 "오전에 집사람이 녹음했던 건디, 이 목소리가 마지막이 되어부렀네…"라며 울음을 삼켰다. 이씨는 54번 버스를 타고 광주 무등산의 증심사(證心寺)에 판소리 수업을 들으러 가던 길에 사고를 당했다.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며 아내가 수년째 다니던 곳이었다. 한씨가 붕괴 사고 뉴스를 본 것은 9일 오후 6시쯤. 불길한 예감에 곧바로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그의 휴대전화에는 '이쁜아내'로 저장된 번호에 7차례 전화를 건 기록이 남아 있었다. 사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종잇장처럼 구겨진 버스와 건물 잔해 주변을 뛰어 다녔지만 아내의 이름은 찾을 수 없었다. 결국 광주 기독병원 영안실에서 아내의 시신을 마주했다. 처음에 한씨는 "우리 아내가 아니다"라고 했다가, 다시 들어가서 아내의 신발을 보고는 털썩 주저앉았다. "내가 몇 달 전에 사준 운동화여…."

    전남공무원교육원에서 무등산국립공원(증심사)까지, 12㎞ 남짓한 거리를 운행하는 '54번 버스' 참사의 피해자는 우리 주위의 평범한 소시민들이었다. 아들 생일상 차려놓고 장사 나온 엄마, 후배들과 동아리 활동하려 학교를 찾은 고등학생 등 이웃 9명은 평소처럼 54번 버스에 올라탔다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광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곽모(여·65)씨가 사고를 당한 이날은 큰아들의 생일이었다. 식당 나가기 전 미역국을 끓여주곤 "생일인디 이것 먹거라" 하고 집을 나섰다. 점심 장사를 마치고 말바우시장에서 찬거리를 사서 54번 버스를 타고 귀갓길에 올랐지만, 목적지를 불과 두 정거장 남겨두고 곽씨는 결국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아들은 "사고 당일 방문이 덜컥 열리는 소리가 나 '엄마 왔는가'라고 무심결에 말했다"면서 "엄마가 영혼이 돼서도 집에 왔는갑다"라며 오열했다.

    광주 조선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고등학생 김모(17)군의 시신을 확인한 부모는 "아이고 내 강아지, 우리 강아지"라고 통곡했다. 김군은 비대면 수업 중이지만, 동아리 후배들을 챙기러 학교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변을 당했다.

    10일 오후 광주광역시 동구청 앞에는 희생자 9명을 추모하는 '합동 분향소'가 차려졌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고교 2학년생 양모(17)군은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또래가 세상을 떠났다고 해 영혼이라도 위로해주고 싶어 40분 정도 버스를 타고 왔다"고 했다.
    기고자 : 광주광역시=김정엽 기자 광주광역시=서유근 기자 광주광역시=강우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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