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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벨트·처칠의 '대서양 헌장' 80년만에 거듭난다

    파리=손진석 특파원 워싱턴=이민석 특파원

    발행일 : 2021.06.11 / 국제 A16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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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든·존슨, 2차대전 두 영웅 모델로 삼아 밀착하며 新선언
    "지구가 직면한 거대한 도전맞서 미국과 영국이 힘 합친다"
    코로나·기후·여행 8개분야 협력, 양국 관광재개 위한 TF도 가동

    10일(현지 시각) 오후 영국 남서부 콘월 지방의 카비스만(灣). 아름다운 해변을 끼고 있는 이곳에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나눴다. 11일부터 이곳에서 열리는 G7(주요 7국) 정상회의를 앞두고 두 정상이 먼저 정상회담을 가졌다. 바이든으로서는 지난 1월 취임 이후 첫 해외 순방이다.

    두 정상은 이번 회담을 마친 뒤 미·영 간 협력 관계를 공고히 하는 새로운 '대서양 헌장(Atlantic Charter)'을 발표한다고 영미권 언론이 일제히 보도했다. 2차 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당시 미 대통령과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가 세계 질서의 방향을 정한 대서양 헌장을 80년 만에 재정립한다는 얘기다.

    루스벨트와 처칠은 당시 대서양의 영국 군함 선상에서 전쟁을 일으킨 파시즘 세력에 대항해 세계 평화를 수호하겠다는 공통 원칙 14개 조항을 발표한다. 대서양 헌장은 유엔 설립의 기초가 됐고, IMF(국제통화기금)와 세계은행을 만드는 주춧돌이 됐다. 이에 따라 바이든과 존슨이 '루스벨트·처칠 콤비'를 모델로 삼아 새로운 대서양 헌장을 발표하면서 밀착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바이든과 존슨의 새로운 대서양 헌장은 민주주의 수호, 사이버 공격 대응, 코로나 사태 종식, 기후변화 대응 등 8가지 분야의 양국 협력 원칙이 담긴다. 중국·러시아에 맞선 서방의 협력 체계 구축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서로 의지하겠다는 취지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양국은 80년이 지난 대서양 헌장의 원칙을 21세기에 맞게 업데이트한다"고 했다. 영국 총리실은 "지구가 직면한 거대한 도전에 맞서 양국이 힘을 합친다"고 했다.

    바이든과 존슨이 모델로 삼은 루스벨트와 처칠은 80년 전 2차 세계대전 당시 '세기(世紀)의 우정'을 보여줬다. 루스벨트와 처칠은 가장 암울했던 시기(Darkest Hour)에 약 2000통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인류 역사상 최대의 위기를 함께 극복했다. 이런 일화도 있다. 1941년 백악관을 방문한 처칠은 목욕을 마치고 벌거벗은 상태로 숙소에 머물고 있었다. 루스벨트가 불쑥 들어왔다가 알몸을 보고 "실례했다"고 나가려 하자 처칠은 "보다시피 나는 당신에게 숨기는 것이 없소"라고 말해 둘이 파안대소했다. 이는 당시 영국을 구한 '알몸 외교'로 불렸다.

    처칠과 루스벨트는 1943년 모로코에서 함께 별장에서 묵으면서 함께 석양을 지켜봤고, 당시 처칠이 모로코 풍경을 담은 '쿠투비아 모스크의 탑'이란 그림을 그려 루스벨트에게 선물했다. 아마추어 화가로 500여점을 남긴 처칠이 2차 대전이 벌어지는 동안 그린 유일한 그림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바이든이 취임 이후 해외에서의 첫 번째 정상회담을 존슨과 가진 것은 그만큼 위기의식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갈수록 영향력을 확대하는 중국에 맞서기 위해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중심으로 전통적인 서구 동맹을 강화할 필요를 느끼고 있다. 바이든은 취임 이후 첫 G7 정상회의를 영국이 개최하자 G7 정상들 가운데 맨 먼저 영국에 날아와 존슨과 따로 만났다. 영국은 브렉시트(EU 탈퇴) 이후 독자적인 외교·경제 역량을 갖추기 위해 미국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양국은 러시아의 위협에도 공동 대응해야 할 필요를 느끼고 있다.

    바이든은 전날인 9일 영국 동부 서퍽의 밀든홀 공군기지에 도착해 미군 장병들 앞에서 "미국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밀든홀 공군기지는 사실상 미군이 독점적으로 사용하는 곳으로서 미·영 군사 협력을 상징하는 장소다. 2015년 이 기지는 폐쇄될 위기에 처했다가 이후 유지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바이든은 미군 장병들 앞에서 "미국은 뜻을 같이하는 국가들을 함께 모을 때 국가 안보와 경제적 번영을 증진하기 위한 더 좋은 위치에 설 수 있다"며 "세계의 미래는 수세대에 걸쳐 미국인들이 구축한 유럽과의 오랜 동맹을 회복하는 데 달려 있다"고 했다. 트럼프식 미국 일방주의에서 탈피하겠다는 외교 방향을 재확인한 것이다. 또한 미·영 정상회담, G7 정상회의, 나토 정상회의, 미·EU 정상회담 순으로 이어지는 일주일간의 유럽 순방에서 전통적인 '대서양 동맹'을 복원하겠다는 의지를 표시한 것으로도 평가된다.

    바이든과 존슨은 코로나 사태로 침체된 세계 경제를 부흥시키는 데도 앞장설 예정이다. 양국 간 관광 재개를 위한 '공동 여행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한다. 두 나라는 서방 진영에서 코로나 예방 백신 접종 속도가 가장 빠르다. 이와 함께 바이든은 존슨과의 회담을 마친 후 내년 상반기까지 1년간 아프리카 및 저개발 국가에 화이자·바이온텍 백신 5억회분을 지원한다는 발표를 할 예정이라고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했다.

    [그래픽] 시대를 뛰어넘어 다시 등장한 미국·영국 간 대서양 헌장
    기고자 : 파리=손진석 특파원 워싱턴=이민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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