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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의 술' 소주의 세계화… 할리우드 스타·뉴요커 잇따라 출시

'아침부터 달려가서 종일 줄 섰는데 결국 빈손이에요.'

"대전까지 가서 구했어요! 재입고에 3개월도 더 걸린답니다."

소셜미디어에 실시간 쏟아지는 후기는 명품 브랜드 '오픈런'(미리 줄 서다 문 여는 순간 매장으로 달려가는 것) 현장 중계를 방불케 했다. 지난 주말 소비자를 들뜨게 한 제품은 1000만원 샤넬 가방도, 2000만원 롤렉스 시계도 아니었다. 주인공은 한 병에 2만~5만원짜리 '키(KHEE) 소주'. 알코올 도수 각각 22도와 38도, 용량은 375㎖와 750㎖로 청량하고 은은한 맛이 일품이라는 평. 할리우드의 유명 패션 디자이너인 한국계 에바 차우가 모국(母國)에 대한 사랑으로 만들었다는 작품이다.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과 배우 고소영이 소셜미디어에 '키 소주' 인증 샷을 올리면서 인기에 불을 붙였다. 국내 병입된 물량 1000병 이상이 이틀 만에 품절됐다.

서민의 술 소주가 '고급'을 달고 세계로 향하고 있다. 에바 차우 같은 영향력 있는 스타부터 힙합 스타 박재범도 '소주 세계화'를 내걸고 프리미엄 소주를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증류식 고급 소주의 맛에 반한 뉴요커들도 수년 전부터 소주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에바 차우의 키 소주는 처음부터 해외 VIP 시장을 염두에 두고 2년 전부터 기획됐다. 그녀는 "제가 태어나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한국의 문화를 세계와 나누고 싶어 키 소주를 만들었다"면서 "한국 전통 술의 아름다운 향과 부드러운 맛이 세계를 매료시킬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150m 천연 암반수를 사용해 180일간 옹기에서 숙성시켰다고 한다. 광주요 그룹의 증류주 브랜드'화요'측에 제작 의뢰했다. KHEE 글자는 요즘 명품 브랜드에서 유행하는 '산세리프체'(장식이 없는 고딕체)로 간결하다. 풍미부터 디자인까지 고급 주류로 만들겠다는 포부다.

미 뉴욕타임스가 "할리우드 문화의 여왕(Culture Queen)"이라고 호명한 에바 차우는 2008년부터 LA카운티 뮤지엄(라크마·LACMA) 이사로 선임되면서 예술계 인사로 이름을 날렸다. 2011년부터 할리우드 스타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와 손잡고 '라크마 아트+필름 갈라'를 구찌 후원으로 주최하며 예술·영화계 최고 권력자 중 하나로 유명해졌다. 한국 스타를 해외에 알리는 후원자로도 이름났다. '키'는 에바 차우의 한국 이름 희(Hee)와 미국 중간 이름 첫 글자 K에서 따왔다. 또 Key(키·열쇠), 기(氣), 재능을 뜻하는 '끼' 등의 의미를 담고 있다. 해외시장이 목표인 만큼 '라크마 아트+필름 갈라' 등을 통해 세계적인 스타들에게 소주를 적극 알린다는 목표다.

힙합 가수 박재범도 있다. 2018년엔 아예 '소주(SOJU)'라는 노래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는 '원소주'라는 소주를 내놓겠다며 올 초 '원스피리츠' 회사를 설립했다. 양조장과 제조 과정의 숙성 장면 등이 일부 공개되자 팬들은 "애국템"이라고 호응했다. 해외 팬들은 "언제 나오냐"며 질문을 잇고 있다. 원스피리츠 관계자는 "올해 안에는 출시할 계획"이라면서 "해외시장이 타깃인 만큼 여러 시도와 지속적인 시음으로 최상의 맛을 끌어내겠다"고 밝혔다.

뉴욕 브루클린에서 미국인 브랜든 힐 대표가 2016년 만든 토끼(Tokki) 소주는 조선 시대의 제조 방식을 모방한 것으로 유명하다. 뉴욕에서 인기를 끌었고, 얼마 전에는 충주에 증류소를 지었다. 한국 찹쌀 등을 이용해 '소주의 본고장'에서 맛으로 겨루겠다며 역수출한 것이다. 젊은 층에 인기 많은 홍대 라이즈 호텔엔 아예 '토끼 바'가 들어섰다. 2015년 한국계 미국인 변호사 캐럴린 김이 만든 여보(Yobo) 소주 역시 해외에서 인기다. 최근 '아시아계 혐오' 사건 이후 아시아계를 집중 후원하며 미 포브스지에 등장했다. 미 포브스지는 "여보 소주처럼 자신의 뿌리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전통을 고급스럽게 표현하려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기고자 : 최보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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