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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서울 여의도 국회 헌정회관을 찾는 손님들이 있다. 나이 지긋하신 전직 의원님들이다. 코로나 시국에도 예외 없이 무료 지하철을 타고 헌정회관에 들러 '식권'을 받는다. 9000원짜리 식권 한 장은 국회 앞 지정된 식당에서 한 끼 식사가 가능하다. 전직 국회의원 모임인 대한민국헌정회가 주는 작은 배려다. 현역 의원을 제외한 헌정회원 1150명 중에 매일 식권을 타가는 사람은 200명쯤 된다고 한다. 여야가 따로 없다.

이들은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잘나갔던' 사람들이다. 의원 시절엔 세상이 좁을 정도로 바쁘게 다녔고 찾는 사람도 많았을 거다. 대개 마지막 선거에 전 재산을 쏟아붓고 낙선해 빈털터리가 됐다. 결국 지역구를 떠나 지하철이 닿는 서울 끝자락이나 경기도 변두리에 자리 잡고 매일 헌정회관을 찾는다. 어떤 전직 의원은 컨테이너에 살면서 당장 끼니를 걱정해야 할 만큼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지난 2013년,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의 일환으로 헌정회가 지급하던 '연로 회원 지원금' 수급자를 대폭 줄인 후로 식권 찾는 사람은 더 많아졌다. 사정을 잘 아는 한 원로는 "정치가 뭔지, 참 부끄럽고 씁쓸하다"고 했다.

원로 정치인들 얘기를 들으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청년 정치인'이 떠올랐다. 청년 정치인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국회 출입을 하면서 청년 정치인들을 만나면 생계 유지는 어떻게 하는지 물어봤다. 대부분 고정 수입이 없는 '무직'이었다. 모 단체 대표 등의 직함을 달고 있지만, 특정 전문직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무직에 가깝다. '청년 대변인' '청년 위원장' 직함으로 정당 활동을 하는 청년들도 당장 밥값 걱정을 한다. 아무리 학벌이 좋고 집안이 좋아도 정치권에서 스스로 돈벌이를 하기까지는 숱한 설움을 겪는다.

우리 사회는 '청년 정치'를 원한다. 구태 정치에 신물이 날 때마다 청년을 찾는다. 특히 선거철만 되면 신선하고 참신한 경력을 가진 청년 찾기에 몰두한다. "용기 있는 청년들이 없다, 도전하라"고 하거나, "요즘 애들은 실패가 두렵나"고들 한다. 그런데 과연 우리 사회는 청년 정치의 기회비용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예전 같은 '돈 선거'는 사라졌고, 선거에 드는 비용도 현저히 줄었다. 하지만 한창 사회활동이 왕성할 시기에 업을 포기하면서 정치에 도전하는 건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다. 박수받는 도전도 아니지 않은가.

총선·지방선거에 출사표를 냈다가 소리 없이 사라진 청년은 한둘이 아니다.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희망을 갖고 정치판에 뛰어들었지만 실패한 이들은 갈 곳이 없다. 일부는 한참 지나 "작은 회사에 취직했다"고 알려오거나, 아예 여의도에 발길을 끊었다. 특정 정당으로 출마했다는 낙인이 찍혀 고생하는 청년들도 있다. 한 정치인의 말이다. "솔직히 젊은 친구들한테 정치하라는 말 못 하겠다. 실패하면 '네 선택이니 네가 책임지라'는 식인데 너무 잔인하다."

이번 대선에서는 또 어떤 청년들이 반짝 떴다 사라질지 궁금하다. 전직 의원도 식권 한 장으로 위로받아야 하는 정치판에서 참신한 청년 정치인을 기대하는 건 무리일지도 모르겠다. 기고자 : 이슬비 정치부 기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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