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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후죽순 쏟아져 정밀 검증 못해… 이번 대선 관련 중징계는 1곳뿐
처벌도 과태료만 내면 문제없어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우후죽순 격으로 쏟아지는 여론조사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지난 1일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여심위)가 대선 여론조사에서 결과를 왜곡할 수 있는 유도 질문을 던진 것으로 드러난 글로벌리서치에 최고 상한액인 과태료 3000만원을 부과했다. 20대 대선 여론조사 중 중징계인 과태료 부과 사례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번 사례는 수많은 왜곡, 조작 여론조사 중 빙산의 일각일 것"이라고 했다. 2018년 이후 공표된 20대 대선 여론조사가 총 470여 건인데, 이 중에서 여심위에 적발되지 않고 언론 등을 통해 유통되고 있는 엉터리 여론조사가 수두룩할 것이란 견해다.

지금까지 수사 의뢰나 과태료 등 중징계 조치가 없었던 이유는 최근에 여론조사가 워낙 많다 보니 모든 조사의 원(原)자료를 정밀하게 모니터링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7년 대선 때에는 여론조사가 총 594건이었는데 이번엔 대선이 6개월 이상 남았는데도 이미 500건에 육박하고 있다. 지금 추세라면 내년 3월까지 800~900건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여심위 자료에 따르면 선거 여론조사와 관련해 조사 결과 왜곡·조작이나 응답 강요 등 선거법 위반 행위에 대해 2017년 대선 때에는 60건을 제재 조치했고, 2020년 총선에선 117건에 달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종류별로는 수사 의뢰 또는 고발이 1건에서 25건, 과태료 부과는 4건에서 6건 등 중징계 사례도 증가했다.

김석호 서울대 교수는 "부실한 여론조사가 줄지 않는 이유는 과태료만 내면 영업에 지장이 없는 '부실한 처벌'의 영향이 크다"고 했다. 최근 들어 하루가 멀다 하고 여론조사를 발표하는 '공장형 여론조사'에 대한 부실 우려도 커지고 있다. 조사 업체들이 초저가 또는 아예 공짜로 여론조사를 실시하고선 이를 언론에 제공하면서 저품질이나 왜곡 조사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과태료 등 징계를 받은 여론조사 회사들이 버젓이 여론조사를 계속하는 것을 막는 법안이 지난 국회에 제출됐지만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지난 대선 때 한 여론조사에선 "대선을 앞두고 50대 정치인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가장 믿을 만한 인물은 누구라고 보세요"라고 물었다. 여심위가 적발한 여론조사 규정 위반 사례에선 질문지에 특정 후보를 응답 항목 1번으로 고정하고 다른 후보들의 순번은 일정한 간격에 따라 순환하는 방식으로 조사한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다섯 후보 중에서 한 명은 응답자 1000명 모두에게 첫 번째로 이름을 불러줬지만, 다른 후보들은 응답자를 250명씩 쪼개서 2~5번을 골고루 배정했다는 것이다.

◇여심위 조치서 드러난 부실 조사 실태

지난 2020년 총선에서 여심위가 심의해서 제재 조치를 내린 여론조사 117건을 위반 유형별로 보면 거짓·중복 응답의 지시 및 권유(19건), 표본의 대표성 위반(14건), 여론조사 결과 왜곡·조작(13건) 등 심각한 사유가 많았다. 당시 여론조사 회사에 대한 고발 조치(24건)도 거짓·중복 응답의 지시 및 권유와 여론조사 결과 왜곡·조작이 대부분이었다. 2016년 총선 대비 여론조사 결과 왜곡·조작(30건→13건)은 감소했지만 거짓·중복 응답의 지시 및 권유(7건→19건)는 증가했다.

여심위가 최근 과태료 3000만원 조치를 내린 글로벌리서치도 일부 면접원이 차기 대선 후보 지지도 조사에서 답을 망설이는 응답자에게 '이재명?' '윤석열이 될 것 같죠?' 등 유도 질문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여심위 적발 사례 중에는 20~30대 표본을 추가하고 60대 표본 수를 임의로 삭제하면서 결과를 왜곡·조작하여 공표한 경우도 있었다. 또 "누가 당선될 것 같은가"라고 조사하고선 그 결과를 각 후보의 '지지율'로 둔갑시켜 발표한 사례도 있다. 특정 지역의 전화번호 국번은 너무 적게 표본으로 선정한 반면 어느 지역 국번은 과대 표집(標集)해서 결과를 왜곡한 경우도 있고, 무소속 후보자를 특정 정당 후보자로 넣은 조사도 있었다.

조사 업계에선 부실한 여론조사가 많은 원인으로 초저가 또는 공짜 여론조사의 문제를 지적하기도 한다. 최근 제재 조치를 받은 글로벌리서치 조사도 '자체 조사'로 실시한 결과를 특정 언론에 비용을 받지 않고 제공했다. 즉 조사 회사로선 당장 이익을 낼 수는 없지만 언론에 지명도를 높이는 효과를 기대했을 수 있다. 비용이 상대적으로 많이 들지 않는 ARS 조사는 200만~400만원 초저가로 언론에 제공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여론조사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공짜 조사 또는 초저가 조사를 하다 보면 면접원도 충분히 채용하지 않고 정확한 표본 선정 과정도 생략한 채 시간에 쫓기며 대충 조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부실 여론조사 막는 법안 뭉갠 국회

여론조사 회사가 과태료 등 중징계를 받아도 영업을 계속하는 데 지장이 없는 '솜방망이 처벌'도 부실 여론조사 양산 원인으로 꼽힌다. 현행법상 여심위 과태료 조치는 등록 제한 규정도 없다. 징역형 또는 100만원 이상 벌금형을 선고받아 등록이 취소된 조사 회사도 1년이 지나면 바로 다시 등록할 수 있어서 실효성이 약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지난 20대 국회에선 여론조사 왜곡이나 조작을 막고자 여론조사 회사에 대한 제재 강화 법안이 발의된 적이 있다. 당시 자유한국당 이종배 의원은 여심위에서 200만원 이상 과태료를 부과받은 여론조사 회사의 등록을 취소하고, 형벌 및 과태료의 경중에 따라 최장 4년까지 재등록을 제한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자유한국당 김상훈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과태료와 벌금 수준을 현행보다 대폭 강화하고, 법 위반으로 여론조사 기관 등록이 취소됐을 경우 3년간 재등록을 못 하게 했다. 더불어민주당 박병석 의원도 등록이 취소된 여론조사 회사가 대표자나 명칭만 바꿔 다시 등록해 적발되면 5년간 등록을 제한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이 법안들은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고 20대 국회 종료 후 모두 폐기됐다. 김석호 서울대 교수는 "여론조사 결과의 왜곡과 조작이 드러나면 그 회사는 영원히 시장에서 퇴출시켜야 한다"며 "여론조사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여심위의 실효성 있는 규제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픽] 선거별 여론조사 위반 행위 조사

기고자 : 홍영림 여론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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