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검색목록 > 기사상세보기
타이틀

[萬物相] 사병 월급 100만원

    김태훈 논설위원

    발행일 : 2021.09.06 / 여론/독자 A34 면

    종이신문보기
    ▲ 종이신문보기
    1988년 가을 사병으로 입대해 초봉 5500원을 받았다. 당시 88 담배 한 갑이 600원이었다. 공짜로 지급받는 한산도와 은하수는 맛이 써 인기가 없었다. PX에서 주전부리 빵이라도 사 먹으려면 집에서 용돈을 받아야 했다. 병장 월급 1만원도 외식 한 번 하면 끝이었다. 직업란에 군인이라 적을 때면 쓴웃음이 나왔다. 30년 뒤 아들이 입대했다. 옛날 쪼들리던 생각이 나서 용돈을 보내주려 했는데 "넉넉히 받으니 필요 없다"고 했다. "병장 월급은 50만원 넘는다"며 알바보다 낫다고도 했다.

    ▶2000년까지 이병 월급은 1만원을 넘지 않았다. 병장 기준으로 10만원을 돌파한 게 2011년이고, 20만원에 도달한 건 2016년이다. 그런데 현 정부 들어 "사병 급여를 최저임금의 절반 수준까지 올리겠다"며 뜀박질을 시작했다. 2017년 단숨에 두 배로 올려 40만원을 돌파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12.5% 오른 60만원으로 정했다.

    ▶요즘 군부대엔 '군 테크'라는 말이 유행한다. 사격이나 각개전투처럼 제대로 군인 노릇 하기 위한 기술이 아니다. 주머니 두둑해진 사병을 위한 재테크를 뜻한다. 은행들은 사병 복무 기간에 맞춘 저축 상품을 내놓는다. 유튜브엔 소액 활용 주식 투자 비법이 올라온다. 소비 성향도 바뀌어 PX에선 남성용 화장품 판매가 늘었다. 훈련으로 지친 피부를 진정시키는 수딩 크림이나 마스크 팩, 달팽이 크림이 인기라고 한다.

    ▶국방부가 사병 급여를 2026년까지 병장 기준 100만원대로 올리는 안을 내놓았다. 직업군인인 부사관 초봉의 절반 수준이다. 여기에 내년 대선을 앞두고 청년 표심을 노리는 후보들의 선심 공약까지 가세하고 있다. 한 후보는 전역 후 사회출발자금 명목으로 3000만원을 주겠다고 했고, 또 다른 후보는 사병 급여를 최저임금 수준으로 인상하겠다고 했다.

    ▶월급 더 준다는데 누가 마다하겠는가. 보상 없는 충성을 뜻하는 '애국 페이'를 청년에게 강요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란 지적도 있다. 군 가산점 혜택이 없어진 마당에 급여 인센티브라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청년에게 군대 급여 인상보다 중요한 것은 제대 이후 펼쳐질 미래다. 한 세대 전엔 비록 빈손 제대를 해도 크게 억울해하지 않았다. 일자리는 풍족했고 결혼하면 몇 해 안에 내 집이 생겼다. 많은 20대가 정권을 성토하는 건 사병 월급이 적어서가 아니다. 아버지가 청년일 때 꿈꾸던 미래를 자기는 꿀 수 없다는 좌절감 때문이다.
    기고자 : 김태훈 논설위원
    장르 : 고정물
    본문자수 : 1246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
    인쇄 라인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