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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연극 '카라마조프가의…' 1인 5역 맡은 정동환 인터뷰

연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10월 12~31일 이해랑예술극장)은 시간의 뭇매다. 러닝타임만 봐도 겁이 난다. 1부(3시간)와 2부(3시간)를 합쳐 6시간. 평일 저녁에는 1부 또는 2부만 공연하고 주말에는 오후 2시부터 9시 30분(90분 휴식 포함)까지 풀코스로 달린다. 하루를 다 바쳐야 경험할 수 있는 마라톤 연극이다.

올해는 도스토옙스키(1821~1881) 탄생 200주년. 그래도 6시간짜리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시대착오적이다. 효율을 따지는 자본주의에 역행하고 '짧게 더 짧게'라는 코로나 시대의 요구에도 어긋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우 정동환(72)을 만났다. 1인 5역으로 종횡무진하며 20분이 넘는 독백을 두 번 던져야 하는 그는 이 연극의 심장. 정동환은 "달달한 연극, 웃기는 연극, 짧은 연극만 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변호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나.

"2~3시간으로 압축하면 막장 드라마처럼 재미있을 것이다. 하지만 도스토옙스키가 의도한 인간의 심연에 닿기는 어렵다. 묵직한 이야기를 전달하려면 무모할 만큼 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연극을 기다리는 수요도 확인했다."

―그 증거는?

"2017년 초연은 1·2부가 합쳐진 주말 공연부터 매진됐다. 아예 안 볼 수는 있어도 1부만 볼 수는 없는 연극이다. 용기를 내서 심도 있는 작품을 만들었고 관객이 응답하니 큰 자신감을 얻었다."

―원작 소설은 걸작에 속하지만 완독한 사람은 드물다.

"방대하기 때문이다. 여느 작품에서 주인공은 선하거나 악하지만 실제 인간은 그렇지 않다. 도스토옙스키는 인간의 내면을 여러 갈래로 찢어서 보여준다. 성자를 빙자한 악마가 있고 악마인 줄 알았는데 선한 사람도 있다. '내 안의 악마와 천사, 괴물'과 마주하게 하는 연극이다. 그 깊이를 탐사하려면 6시간으로도 부족할지 모른다."

―1인 5역에 대사량도 엄청날 텐데.

"실내 자전거를 매일 두 시간쯤 타면서 그 대사를 다 내뱉는다. 이 귀한 이야기를 새롭게 전달할 방법을 궁리 중이다. 무대에서 쓰러져 죽어도 좋다고 나는 생각한다. 고통스러운데 행복한 적 있나? 요즘 내가 그렇다."

―이제 좀 편한 연극을 하고 싶진 않나.

"썩어빠진 생각이다. 해낼 수 있는 배역을 피할 때 배우는 위축된다. 그게 반복되면 무너진다. 무대에서 대사도 까먹고 폐를 끼친다면 물론 그만둬야지. 아직은 아니다. 아주 어려운 배역이 있다면 내가 하고 싶다. 이렇게 위기를 자초하는 이유는 계속 도전하는 배우도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기 때문이다. '대심문관과 파우스트' '단테 신곡' 등 너무 힘든 연극을 몇 편 겪고 나서 편해졌다. 무슨 일을 하기에 어울리는 나이란 없다. 그런 편견에서 벗어난 것만으로도 난 기쁘다."

―그래도 사람인데 가끔 후회도 하나.

"자주 한다. 동시에 '이거 극복 못하면 아무것도 못한다'고 나를 독려한다."

―'월차든 휴가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보고 싶을 만한 연극을 만들지 않는다면 연극은 필요 없다'는 말을 한 적 있는데.

"내 신념이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지나가다 연극 한 편 볼까 하는 사람들을 위한 연극은 절대 아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내가 누구인지 성찰하게 하는 연극이다. 세상이 하향평준화를 시켜서 그렇지, 우리는 다 귀한 사람들이다. 극장은 그 가치를 확인하는 곳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고산 등반을 즐기고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4130m)에도 다녀왔다는 정동환은 "어떤 나이의 배우로 정형화되는 게 싫다"고 했다. 6시간짜리 연극은 또 하나의 도전이다. 젊은 배우라면 그를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는 일종의 베이스캠프로 삼아도 좋을 것 같았다. 1969년에 데뷔한 일흔둘의 배우는 "연습하러 가야 한다"며 쏟아지는 장대비 속으로 사라졌다.

[그래픽] 마라톤 연극 볼 때 팁 기고자 : 박돈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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