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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봉에 오르면서 비를 맞지 않으면 인간이 아니라던가. 일 년 중 300일은 안개에 묻혀 있으니 하는 말이다. 지난해 성인봉으로 가는 초입에 굵은 빗줄기를 만났다. 다행히 도동에서 출발해 팔각정에 이르니 빗줄기가 가늘어지고 중턱쯤 올랐을 때는 그쳤다. 그리고 선물처럼 성인봉에서 멋진 구름을 만났다. 나리분지로 내려가는 길은 급경사다. 나무 덱으로 만든 계단을 놓지 않았으면 접근도 힘든 원시림이다. 마음은 벌써 나리분지 식당에서 산채 밥상〈사진〉을 앞에 두고 호박 막걸리 한잔하고 있었다.

울릉도 섬살이는 바다보다 산에 많이 의지했다. 성인봉은 울릉도 최고봉으로 주변에 식물 300여 종이 분포하며 울릉도 특산종만 40여 종에 이른다. 성인봉으로 오르는 산길에서 고비, 민들레, 섬말나리, 둥굴레, 울릉엉겅퀴를 만났다. 이들만 아니다. 산마늘(명이), 전호, 부지갱이는 특산물로 널리 알려져 있고, 섬바디, 눈개승마, 땅두릅, 어성초, 두메부추, 서덜취, 울릉국화, 천궁 등 끝이 없다. 이 중 미역취와 부지깽이를 먼저 재배했고, 천궁, 눈개승마(삼나물), 산마늘도 산비탈을 일궈 심었다.

이 산채들은 대부분 구황 식품이었다. 쌀이 귀한 섬에서 명이밥, 감자밥, 무밥, 옥수수밥, 옥수수죽 등으로 부족한 곡물을 대신했다. 특히 '명이나물'은 춘궁기에 목숨을 이어준다고 해서 붙은 명칭이다. 지금은 울릉도뿐만 아니라 서울 유명 식당에서 계약 재배를 해서 가져가고 있다. 이렇게 산마늘 소비가 늘면서 주민 중에는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는 자연산 산마늘을 채취하려 사람 발길이 닿지 않는 깊은 골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산마늘을 채취하다 일 년에 한두 사람이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고 한다.

성인봉은 산채만 주는 것이 아니라 땔감은 말할 것도 없고, 식수를 제공하는 저수지 역할도 훌륭하게 해냈다. 나리분지에 이 산채로만 밥상을 차리는 식당이 있다. 성인봉에 오른 길에는 섬피나무, 너도밤나무, 섬고로쇠나무 등이 군락을 이루어 봄여름에는 초록이 싱그럽고, 가을에는 단풍이 아름답다. 기고자 : 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섬발전연구지원센터장
장르 :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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