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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잇단 역사퇴행… 한일관계 악화도 영향

일본 교과서의 '종군 위안부' '강제 연행' 표현 수정은 28년간 이어진 일본 극우 세력의 '고노 담화' 흔들기의 결과다. 한때 한국·중국과의 관계 등을 감안해 소수 의견에 머물던 이들의 주장은 아베·스가 내각을 거치며 주류 의견으로 부상했고, 해산을 앞둔 스가 내각이 우익의 숙원을 풀어줬다. 최근 한일 관계 악화 등 문재인 정부의 대일 외교 실패도 일본의 우경화 폭주에 빌미를 줬다는 지적이다.

고노 담화란 1993년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관방장관이 '이른바 종군 위안부' 표현을 사용하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군의 관여를 인정하고 사죄한 것을 말한다. 우익 세력은 발표 직후부터 거세게 반발했다. 위안부가 강제 연행됐다거나 일본군이 깊이 관여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므로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 집권 이후 이 같은 주장은 점차 주류 여론으로 부상했다. 장기 불황으로 가라앉은 일본을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나라'로 만들겠다는 아베 전 총리에게 이전 내각의 '과거사 사죄 담화'는 눈엣가시였다. 공식적으로는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한다면서도 끝없이 이에 반하는 이중 행보를 이어갔다. 2014년엔 고노 담화가 역사적 사실이 아닌 한일 외교와 교섭에 입각한 산물이라고 주장하며 수정을 시도했다.

이번 교과서 표현 수정은 이 같은 기류 속에 극우 세력과 스가 내각이 합작한 결과다. 극우 세력의 지지를 받는 일본유신회 소속 중의원 바바 노부유키(馬場伸幸)가 정부에 "종군 위안부라는 표현에는 군에 강제 연행됐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 아니냐"고 질의한 게 발단이 됐다. 이후 스가 내각이 지난 4월 27일 각의(국무회의)에서 '위안부라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결정했고, 한반도 출신 노동자에 대해서도 '강제 연행'이라고 일괄 지칭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입장을 정리했다. 문부과학성은 5월 출판사 임원들을 대상으로 이례적으로 '교과서 기술 정정 안내 온라인 설명회'를 열어 보조를 맞췄다. 결국 각의 결정 5개월 만에 교과서에서 '종군 위안부' 표현이 사라지게 됐지만, 별다른 지적·비판도 나오지 않았다.

이 같은 일본의 역사 퇴행에는 최근의 한일 관계 악화도 영향을 미쳤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9일 "일본이 과거엔 우경화 노선을 걸을 때 최소한 한국의 반응을 의식했는데 더 이상 그러지 않는다"며 "문재인 정부가 한일 위안부 합의를 무력화하는 등 양국 정부 간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점을 역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는 박근혜 정부와 아베 내각이 오바마 행정부의 설득 끝에 도출해낸 결과물이다. 일부 미흡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일본 측이 정부 차원의 책임을 인정한 점, 총리 명의의 사죄 메시지가 나온 점, 피해자 지원 재단에 일본 정부 예산 10억엔이 쓰였다는 점이 일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적폐 청산 차원에서 외교부에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위안부 합의를 검증했고, 문 대통령은 "중대한 흠결이 있었음이 확인됐다"고 했다. 이어 위안부 합의의 결과물인 화해·치유 재단을 해산해 사실상 합의를 백지화했다. 2018년엔 일본 기업에 대한 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까지 나와 한일 관계는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최악에 빠졌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는 "과거사 문제에서 강제성이 인정되면 그게 불법이고, 배상으로 이어진다는 걸 한국이 보여줬기 때문에 일본 정부가 이에 대항해서 강제성을 희석하는 정책적 대응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의 대일 정책 기조가 일본 정부의 조직적·체계적인 우경화 조치들을 부추겼다는 것이다.

도쿄의 외교 소식통은 "일본 입장에서 대법원 판결은 한일 관계의 근간인 1965년 청구권 협정을 부정한 것이고, 위안부 합의 백지화는 정부 간의 공식 합의라도 한국 정권이 바뀌면 언제든 폐기될 수 있다는 교훈을 남겼다"며 "일본 우익들이 죄책감 없이 우경화 폭주를 하게 된 측면도 있다"고 했다. 기고자 : 이용수 기자 도쿄=최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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