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서이제 지음｜문학과지성사｜384쪽｜1만4000원

'0%'. 아무것도 없는 상태다. 2018년 등단한 서이제가 그리는 이 시대의 청춘들은 밑져야 본전치기로 하루를 산다. 단편 '0%를 향하여' 속 청춘들은 한 해 1000만 관객이 5편이나 나왔던 '한국 영화 100주년' 때 전체 관객 점유율 1%인 독립예술영화에 매달려 있다. 제작비를 벌기 위해 과외나 아르바이트에 나서기도 하지만,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지방으로 내려가 사진 스튜디오를 차리는 동료도 나온다. 주인공은 친구를 만나기만 하면 술을 마시며 "어차피 독립영화는 안 돼" "도망쳐" 씩씩대면서도, 영화 이야기를 나누고 영화를 보러 간다. 이유는 단순하다. 독립 영화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역성장과 침체의 시대, 젊음은 가만히만 있어도 추락하기 일쑤다. 단편 '셀룰로이드 필름을 위한 선'은 코닥이 필름 생산 중단을 선언하고, 필름 영화에서 디지털 영화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놓인 영화학과 학생들을 그린다. 선배는 필름을 불태워 버리고, 화자는 디지털이 "세상을 더욱더 구린내가 나도록 만들었다"며 분노한다. 비용 걱정 없이 편하게 찍을 수 있는 까닭에 영상은 넘쳐나겠지만, 영상이 영화가 되고 영화학도가 감독이 될 전망은 갈수록 어두워지기 때문이다.

7개 단편 대부분이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쓰였다. 젊은 화자들은 하나같이 자기분열적인 환자처럼 울고 웃고 고함치고 낙담하고 자조한다. 이들이 '투머치토커(말이 너무 많은 사람)'가 된 까닭은 불안하기 때문이다. 불확실하지만 하고 싶은 것을 한다. 계속 영화를 찍는다. 0%는 더 추락하지도 못할 바닥이기에 오를 일만 남아있는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아닌 것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기고자 : 이기문 기자
본문자수 : 872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