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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조선에 와서 처음으로 촬영장에 갔던 날. 누군가 "인영씨, 여기로 왔어?"라며 인사를 건넨다. 익숙한 목소리에 돌아 보니 세상에, 조연출 시절 종종 함께 촬영을 했던 진행팀 J가 아닌가! 반가우면서도 깜짝 놀랐다. 방송 경력 20년이 넘은 '진행'이라니. '생활의 달인'에 나가도 되겠어! 예능 프로그램이 끝날 때 나오는 스태프 자막을 눈여겨보는 기이한 취미를 가진 사람이라면, '진행'이라는 업종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진행이 뭔가?' 싶은 게 더 자연스럽다는 이야기.

웬만한 예능 프로그램은 '진행' 없이는 진행이 되지 않는다. 스튜디오 녹화 중간 소품이 들어가야 하거나 다음 순서를 위해 무대 위 꽃가루를 쓸어야 할 때, 혹은 화장실에 간 출연자가 돌아오지 않을 때, 야외 촬영 중 장작에 불이 붙지 않거나 갑자기 구경꾼이 끼어들어 소란스러워질 때, 수영장에서 출연자들이 뛰어넘을 부표를 잡아야 하거나 갑자기 고무신을 사러 근처 마트를 가야 할 때까지, 촬영장에 무언가 필요한 상황이 되면 누군가 목청 높여 외치기 마련이다. "진행! 진행팀 어디 있어?"

이들의 정식 명칭은 보조출연자이다. 대개 ○○예술 등의 이름을 가진 회사 소속으로 촬영장에 파견되는 이들을 모두 '보조출연자'라고 하는데, 역할에 따라 촬영 현장에서 부르는 법이 다르다. 드라마 촬영 중 로비나 마트의 '지나가는 사람들' 역할을 맡는 진짜(?) 보조출연자는 엑스트라, 카메라 삼각대와 배터리를 나르고 라인을 정리하는 등의 일을 하는 카(메라)보(조), 그리고 예능 프로그램의 촬영 '진행'을 돕는 연출 보조는 '진행'이라고 부른다.

J와 같은 베테랑 진행은 다양한 촬영장 경험을 바탕으로 현장의 흐름을 읽고, PD나 작가가 목을 빼고 두리번거리기만 해도 '○○ 때문에 그러지? 막내에게 이미 시켜놨다'고 답해주는 신공을 보여주곤 한다. 말하자면 '진행'은 제작진의 마음을 읽고 손과 발이 되어 주는 만능 해결사인 셈.

어쩌면 극한의 스피드로 일하는 대한민국 방송계에만 있을지도 모를 '진행'은 K예능을 지키는 보이지 않는 파수꾼이다. 촬영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한 말 그대로 모든 일들을 다 하는 그들을 위해 좋은 피디라면 응당 '진행비' 쓰는 것을 아까워하지 말아야 하는 법! 오늘도 촬영장을 종종걸음으로 누비고 있을 대한민국 모든 진행팀에게 박수를 보내는, 방송가 이야기였습니다. 기고자 : 황인영 TV조선 예능국장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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