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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라두카누 US오픈 우승

2021 US오픈 여자 단식 결승은 미국 뉴욕이 9·11테러 20주기를 맞이한 11일(현지 시각) 저녁에 열렸다. 결승전에 등장한 선수들은 테러 이듬해 태어난 열아홉 동갑내기였다. 에마 라두카누(영국·150위)와 레일라 페르난데스(캐나다·73위)가 네트를 마주 보고 섰다. 세계 최대 테니스 경기장인 아서 애시 스타디움에 들어찬 관중 2만3000여 명은 앳된 패기로 이글거리는 두 소녀가 기특해서 "고(Go) 에마!"와 "고 레일라!"를 번갈아 외쳤다. 둘의 맞대결은 2018 윔블던 주니어 대회 이후 처음으로, 당시엔 라두카누가 세트스코어 2대0으로 이겼다.

◇19세 영국 소녀의 완벽한 우승

이번에도 라두카누가 1시간 51분을 뛰어다닌 끝에 이겼다. 그가 시속 174㎞ 서브에이스로 세트 스코어 2대0(6-4 6-3) 승리를 확정짓고 코트에 주저앉는 순간 테니스 역사상 유례 없는 우승이 탄생했다. 예선을 거쳐 올라온 선수의 사상 첫 메이저 대회 우승. 생애 두 번째로 참가한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한 최초의 여성이기도 한 라두카누는 예선 3경기와 본선 7경기를 합해 총 10경기 동안 상대에게 단 한 세트도 안 내줬다. 2014년 세리나 윌리엄스 이후 첫 무실(無失)세트 US오픈 챔피언이고, 2004년 열일곱 나이로 윔블던 트로피를 차지했던 마리야 샤라포바 이후 최연소 메이저 챔피언이다. 영국 여성으로선 버지니아 웨이드(1977년 윔블던) 이후 44년 만에 트로피를 들었다. 지금껏 테니스로 번 돈이 약 4000만원인데, 이번 우승으로 상금 250만달러(약 29억원)를 받는다. 세계 랭킹은 150위에서 23위로 껑충 뛴다.

라두카누는 당초 예선전이 끝나면 귀국할 비행기 표를 끊어뒀는데, 3주나 뉴욕에 머물더니 끝내 시상대까지 올랐다. 예상치 못한 선전이라 가족도 곁에 없었다. 그는 "메이저 대회 우승을 항상 꿈꿨지만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은 몰랐다. '신나게 뛰면서 대회장에 오래 머물러보자. 안 될게 뭐 있어' 생각으로 경기했는데,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고 기뻐했다. 준우승한 페르난데스는 "오늘 패배는 아프지만, 앞으로 더 열심히 훈련할 자극제가 될 것"이라며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뉴욕이 지난 20년간 보여준 놀라운 회복력을 나도 닮고 싶다"고 말해 뉴욕 관중의 박수를 받았다. 페르난데스는 세계 랭킹 5위 이내 선수를 3명 꺾고 결승까지 왔지만, 지난 네 경기 연속 풀세트를 뛴 여파를 마지막에 극복하지 못했다.

◇"코트에서 압박감은 無…공부가 좋다"

라두카누는 인터뷰 때마다 "코트에서 전혀 압박감을 안 느낀다"고 말한다. 그에겐 테니스보다 공부가 더 중요했다. 루마니아계 부친과 중국계 모친이 모두 금융업에 종사해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그는 "A학점이 아니면 용납이 안 된다"는 신조로 공부해 영국에서 5% 학생만 입학하는 공립 영재학교(그래머 스쿨)를 다녔고, 올 초 A레벨 테스트(영국의 대입)에서 수학과 경제학 A학점을 받았다. 논리학과 토론을 좋아해서 변호사가 꿈이다.

테니스는 다섯 살 때부터 배웠고, 승마·골프·스키 등 각종 스포츠를 섭렵했다. 공부하느라 3년 전 프로로 전향하고도 지금껏 여자 프로 테니스(WTA) 투어를 세 번만 뛰어 랭킹이 세 자릿수였다. 입시를 다 마치고 지난 7월 와일드 카드로 처음 나간 윔블던에서 16강까지 올랐고, 두 번째 메이저 출전인 이번 US 오픈에선 예선을 거쳐 우승했다.

영국은 난리가 났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직접 축전을 보냈고, 보리스 존슨 총리와 윌리엄 왕세손 부부 등 유명 인사들이 앞다퉈 갈채를 보냈다. 업계에서는 그가 유럽과 중국 혈통을 동시에 지닌 덕분에 광고와 후원 계약으로 2500억원 이상 벌 수 있다고 전망한다. 반면 여자 테니스가 매 대회 다른 챔피언을 배출하는 만큼, 좀 더 신중히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자신을 둘러싸고 세계의 큰손들이 갑론을박을 벌이는데, 정작 열아홉 영국 소녀는 변함없이 차분하고 발랄했다. "앞으로 제 인생이 어떻게 바뀔지는 전혀 모르겠습니다. 일단 오늘은 하던 대로 샤워를 했어요. 저는 계속해서 매 순간을 즐기며 살 거예요!"

그는 이제야 전업 테니스 선수로서 사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한다.

[그래픽] 19세 라두카누가 세운 기록 기고자 : 양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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