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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진의 돈과 세상] (48) 영웅과 역적 사이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발행일 : 2021.12.01 / 여론/독자 A38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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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밀양 사람 김원봉이오." 영화 '암살'에서 여자 독립투사 안옥윤(전지현 분)에게 던진 첫마디다. 김원봉은 틀림없는 독립운동가지만, 해방 후 월북하여 북한의 고위직을 지낸 경력 때문에 평가하기가 괴롭다.

    미국의 해리 화이트도 그렇다. 화이트는 영국 경제학자 케인스와 함께 전후 국제통화질서를 설계하였으며, 그 공로로 국제통화기금(IMF)의 초대 미국 이사를 지냈다. 그런 탁출(卓出)한 공직자가 소련 스파이였다는 사실은 미국인들을 무척 곤혹스럽게 만든다.

    리투아니아 출신의 유태계 이민 2세였던 화이트는 집안 형편상 대학에 못 갔다. 그런데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공로로 정부가 학비를 대주자 늦깎이 대학생이 되었다. 컬럼비아와 스탠퍼드 대학교를 거쳐 38세에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가 되었다. 미국 주류 사회의 일원이 된 것이다.

    그래도 당시 만연했던 반(反)유태 정서 때문에 취직은 어려웠다. 그때 유태계 재무장관인 모건소가 그를 장관 보좌관으로 특채했다. 그리고 각종 1급 국가 기밀들을 맡겼다. 전후 독일을 분할 통치하는 방안을 소련과 협의하거나 국제통화질서 재편을 검토하는 것이 화이트의 일이었다.

    미국은 나치가 패망한 서독 점령지에서 새 화폐를 뿌렸다(1948년 화폐 개혁). 그런데 화폐 원판 하나가 사라졌다. 알고 봤더니 소련이 입수하여 미국과 서독을 교란하고 있었다. 비슷한 사고들이 계속되었다. 에드거 후버 FBI 국장이 공개리에 소련 간첩 색출 작업에 돌입했다.

    그러자 화이트는 심리적 부담감을 느꼈는지,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었다. 나중에 밝혀진 FBI의 극비 문서에는 그가 간첩이었다는 증거가 차고 넘쳤다. 하지만, 매카시 선풍 때 만들어진 그 기록의 신빙성은 지금까지도 논쟁거리다.

    1948년 이 무렵 FBI는 화이트가 스파이였다고 결론지었다. IMF의 아버지 화이트의 정체는 영원한 수수께끼다.
    기고자 :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장르 :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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