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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포커스] 날강도(daylight robbery)란 영어표현은 잘못된 세금에서 유래했다

    나지홍 경제부 차장

    발행일 : 2021.12.02 / 여론/독자 A35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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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어에 'daylight robbery'란 표현이 있다. 직역하면 '햇빛 강도질'이란 뜻인데, 영한사전에서는 '날강도'나 '터무니없이 비싼 요금' 정도로 번역한다.

    누구에게나 공짜인 태양빛을 빼앗아간다니,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이런 표현이 생긴 유래를 찾아보면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1696년 영국 국왕 윌리엄 3세가 '창문세(window tax)'라는 세금을 도입했다. 창문이 많을수록 집이 크다는 뜻이니까 세금을 낼 능력이 있다고 본 것이다. 창문 6개 이하인 집은 세금을 면제해주고 7개 이상인 집부터 걷었다. 창문이 10개 넘는 집은 세금을 중과(重課)했다. 다주택이나 고가 주택일수록 비싼 세금을 물리는 우리나라 종합부동산세와 닮았다.

    창문세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부작용을 낳았다. 이 제도가 유지된 150여 년간 영국 주택 외관이 바뀐 것이다. 갑부들은 창문을 유지해 재력을 과시한 반면, 세금 내기 힘든 사람들은 창문을 벽돌로 막아버렸다. 아직도 영국에는 이 시대 지어진 창문 없는 건물들이 많다.

    특히 월세 사는 서민들의 피해가 컸다. 임대업자들이 세금을 피하려고 창문을 없앴기 때문이다. 그래서 햇볕 안 드는 어두컴컴한 집안에서 생활해야 했던 서민들 중심으로 생겨난 표현이 'daylight robbery(날강도)'라고 전해진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올해 3월 '납세자의 날' 행사에서 이 창문세를 예로 들며 응능과세(應能課稅)의 원칙을 강조했다. 세금은 납세자의 부담 능력에 맞춰 부과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세금을 걷을 때는) 납세자의 반응 및 수용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납세자들이 억울하게 느끼고 반발하는 세금은 잘못됐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올해분 종부세 고지가 시작된 지난달 22일부터 정부가 보여준 반응은 홍 부총리가 강조했던 것과는 너무 달랐다. 납세자의 억울한 사연을 살피기는커녕 세금 뜯어내는 데 안달이다.

    종부세 논란의 출발점은 폭발적으로 늘어난 세 부담이다. 주택분 종부세액이 5조7000억원으로 이전 10년간을 합친 것(5조1000억원)보다 많다. 너무 급하게 세금을 올리다 보니 억울한 사례가 빈발했다. 대표적인 게 투기와 상관없는 일시적 2주택자다. 고위 공무원 출신의 70대 납세자는 새 집으로 이사 가는 과정에서 기존 집을 조금 늦게 팔았다는 이유로 2주택자로 몰려 종부세가 400만원에서 1억6000만원으로 급증했다. 부모님의 시골 집을 상속받는 바람에 졸지에 2주택자가 돼서 100배 넘는 세금을 고지받은 사연도 부지기수다.

    정부는 일시적 2주택자가 투기 목적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해 양도소득세를 중과하지 않는다. 그런데 유독 종부세는 가혹하게 부과한다. 명백한 세법 간의 불일치인데도 바로잡으려는 노력도 안 한다.

    오히려 청와대 정책실장은 "충분한 기간을 두고 예고했고, 피하려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다"며 납세자 탓을 했다. 기획재정부도 "98% 국민은 종부세와 무관하다"며 납세자 편 가르기에 나섰다. 소비자를 왕으로 모시는 기업처럼은 아니라도 최소한 납세자를 봉으로 간주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홍 부총리는 납세자의 날 때 "납세자가 기꺼이 협력하는 제도 설계가 중요하다"며 또 하나의 영국 사례를 들었다. 11세기 영국 코벤트리 지방의 영주 부인이던 고디바는 주민들의 세금을 줄이기 위해 "나체로 말을 타고 마을을 한 바퀴 돌라"는 남편의 황당한 제안을 받아들였다. 진정성에 감동한 주민들은 창문 커튼을 내리고 밖을 쳐다보지 않았다고 한다. 정부가 말로는 고디바 부인을 배우자고 하면서 정작 행동은 주민을 못살게 굴었던 영주처럼 한다.
    기고자 : 나지홍 경제부 차장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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