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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객 조은산의 시선] 돼지 마을 이야기

    조은산 논객·'시무 7조' 저자

    발행일 : 2021.12.03 / 여론/독자 A30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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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돈업자의 돼지가 오늘 오후 죽었다. 옹골찬 정수리로 무게감 있게 '오함마'를 받아 낸 그의 돼지는 '꽥' 하는 비명을 내지르며 몸부림쳤고, 한 많던 삶을 뒤로한 채 비로소 심정지에 이르고 만 것이다.

    살진 돼지 한 마리가 죽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주변을 초계 비행하던 똥파리들이 미처 죽은 돼지의 누린내를 맡기도 전에, 수많은 인간의 욕망이 뻗어 나와 죽은 돼지를 덮쳤다.

    먼저 도축업자 이씨가 나섰다. 날카로운 눈과 세련된 발골, 정형술로 무장한 이씨는 절명한 돼지의 몸에 힘껏 칼을 박았고 거센 콧김을 내뿜으며 고기는 고기대로, 내장은 내장대로, 신들린 듯 돼지의 육신을 조각조각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다음은 유통업자 박씨 차례였는데, 다년간 축적해온 그녀의 유통망은 최근 저리 할부로 품에 안긴 냉장 탑차와 함께 빛을 발하기 시작했고, 조각난 돼지를 적재함에 실어낸 그녀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마침내 마을 입구를 향해 차를 몰기 시작한 것이다.

    축제가 시작됐다. 해 질 무렵의 마을에 인간의 욕망처럼 이글거리며 숯불이 피어올랐다. 석쇠 위로 몸을 눕힌 삼겹살은 앞뒤로 구르며 기름땀을 흘려대기 시작했다. 입안의 그것은 탄탄한 육질을 자랑하며 어금니 사이에서 버티다 누릿한 육즙을 터트리며 으깨어졌다. 이미 취한 술꾼들은 해장을 하겠다며 국밥집을 찾았다. 청양 고추를 베어 물어 입안을 달군 그들은 깊게 우러난 국물을 들이켜 혓바닥 위를 지져댔다. 아삭아삭 웃던 겉절이는 청량한 배추 즙을 쏟아내며 행복을 노래했고 꺼진 숯불 위로 희끄무레한 연기가 피어오를 즈음, 축제는 마침내 끝이 났다. 마을 사람 중 배를 채우지 못한 자는 하나도 없었고 깊게 취하지 않은 자 또한 하나도 없었다. 마을 들판 위로 기름진 풍요가 자르르 번져나갔다.

    다음 날 오후, 마을 이장이 사망했다. 그의 황망한 죽음에 촌로들은 긴급 주민 회의를 열어 사태 파악에 나섰다. 그는 평소 고지혈증과 당뇨를 앓았는데, 어제 먹은 기름진 음식과 소주가, 안 그래도 벌집이 된 그의 심혈관계에 치명적 손상을 입혔을 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때였다. 마을 돼지들의 생사를 거머쥔 이장의 권한은 막강했는데, 평소 이장 지위를 탐내던 어느 유지가 주민들을 모아놓고 일장 연설을 늘어놓은 것이다.

    "제 가슴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고기를 맛보여 드리겠다는 마음으로 뜨겁습니다. 삼겹살을 좋아하는 주민도, 순대를 좋아하는 주민도 모두 이 마을의 주민입니다. 우리 마을에서 고기의 양은 공정할 것이요, 가격은 평등할 것이며, 육질은 정의로울 것입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주민들은 감격해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리고 누군가 미리 준비했다는 듯 품속에서 촛불을 꺼내 들어 그의 이름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 밤, 주민들은 만장일치로 새 이장 추대에 동의한다. 마침내 도래할 새 시대의 물결이 장엄한 촛불이 되어 일렁였다. 모두가 촛농처럼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다음 날, 새 이장은 행동에 나섰다. 그는 먼저 양돈업자의 돼지 가격이 지나치게 높다는 것을 문제 삼았고, 돼지 판 돈의 절반을 마을 기금으로 헌납하라며 양돈업자를 겁박하기 시작했다. 양돈업자는 돼지 가격은 수시로 변해왔으며 또한 가격은 업자가 아니라 도축·유통업자, 고깃집 사장을 비롯한 주민들이 정하는 것이라 항변했지만 소용없었다. 제 돈의 절반이나 뜯길 마음은 없었던지라 그는 결국 고육지책을 썼다. 돼지를 숨겨두기 시작한 것이다. 마을 곳곳에 숨겨둔 그의 돼지가 밤마다 꽥꽥대며 울었다. 주민들은 '이것이 도통 무슨 소리인가' 의아해했지만, 새 시대가 다가오는 소리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긴 그들은 곧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결국 돼지의 씨가 말랐고 돼지고기 가격이 폭등했다. 먼저 삼겹살 가격이 오르자 다음은 목살, 항정살, 갈비 순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고기 가격이 오르자 부속과 순대 가격마저 꿈틀대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돼지고기 씨가 말라붙었고 돼지를 이용하는 모든 유의 음식이 자취를 감추었다. 모두가 고기를 먹지 못해 눈이 퀭했고 입가에는 마른 침이 눌어붙어 있었다. 더러는 다리에 힘이 붙지 못해 지팡이를 짚었고 더러는 들것에 실려 마을 밖으로 던져졌다.

    3년이 지났다. 마을에서 다시 축제가 열렸다. 집 밖으로 기어 나온 주민들이 모여들었다. 그런 그들 앞에 고기가 놓였다. 주민들은 말없이 접시를 내려다보았다. 대패 삼겹살 한 장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숯불 역시 보이지 않았다. 머리가 깨진 듯 붕대를 감고 있던 누군가가 말했다.

    "위대한 촛불 마을이니 숯불 대신 촛불에 구워 드시지요."

    그러자 사람들은 말없이 촛불을 꺼내 불을 댕겼다. 촛불이 타오르며 그들의 얼굴을 밝혔다. 움푹 꺼진 눈 주변은 흡사 구멍이 난 듯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들은 웃고 있었다. 이미 그들 머릿속에 삼겹살과 족발과 순댓국은 없다. 눈앞에 대패 삼겹살 한장만이 있을 뿐이다.

    "고기의 양은 공정하게 씨가 말랐고 가격은 평등하게 폭등했으니 육질은 얇고 정의로워 미칠 지경이로구나…."

    술에 취한 촌로가 나지막이 읊조렸을 때, 숨은 돼지들이 꽥꽥대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못 들은 셈 치기로 했다. 그래야 살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을 뒤편 헛간에서 누릿한 고기 내음과 함께 연기가 피어올랐다. 이장과 한통속이 된 양돈업자가 이장과 그의 무리를 위해 두툼한 삼겹살을 굽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주민들은 이 또한 못 본 셈 치기로 했다. 그래야 울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을은 행복을 되찾았다. 불어온 바람에 마을 입구의 이정표가 삐걱대며 울었다. 마을 이름은 재인군 민주읍 이재면 대장동 환장리였다.
    기고자 : 조은산 논객·'시무 7조' 저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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