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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오후 서울 강남역 삼성타운건물의 세미나실. 삼성증권이 주최한 '공익법인 투자 포럼'에 서울·대구·부산 등 전국 각지의 공익법인 관계자 70여명이 모였다. 강연 주제는 '초저금리 시대의 자산 운용법'이었다. 정기예금 못지않게 안정적이면서도 더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채권형 펀드 같은 상품들이 소개되자, 참석자들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거나 열심히 메모했다.

하지만 강연이 끝나고 서로 인사를 주고받는 참석자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한 참석자가 "좋은 상품이 있으면 뭐해요. 막상 투자를 허가해달라고 신청하면 담당 공무원들이 거절할 텐데"라고 볼멘소리를 하자, 다른 참석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참석자는 "얼마 전 교육청에 채권형 펀드 투자를 허가해달라고 신청했다가 퇴짜 맞았다"면서 "0.1%라도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는 상품은 아무리 수익률이 높아도 '그림의 떡'"이라고 말했다.

본지가 이날 포럼에 참여한 공익법인 관계자를 설문조사한 결과, 열 명 가운데 여덟 명꼴(81%)로 "정기예금 이외의 다른 투자는 주무 관청이 허가를 거의 내주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이들은 "주무 관청이 금융자산이나 부동산 투자에 대해 정확한 기준을 마련하지 않은 채 규제만 남발한다"거나 "투자 환경은 나날이 변하고 있는데 행정 당국이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불만을 쏟아냈다.

초저금리 쇼크를 겪는 공익법인들이 정기예금보다 수익률이 높은 다른 금융상품에 투자하지 못하는 것은 주무 관청이나 담당 공무원에 따라 투자 허용 기준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본지가 전국 17개 시도(市道) 교육청을 조사한 결과, 주식·채권·보험 상품 등에 대한 허가 기준이 제각각이었다. 서울은 채권 투자를 허용하되 주식 투자는 허용하지 않는다. 반면 울산은 서울과 반대로 주식 투자를 허용하고, 채권 투자를 금지하고 있다.

규정상 투자가 허용돼 있는 금융 상품도 담당 공무원의 재량에 따라 투자 불가(不可) 판정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다. 서울 성동구의 한 장학재단 관계자는 "예전에 5~6년간 펀드 상품에 투자했는데, 2년 전 담당 공무원이 바뀌더니 '위험한 상품에는 절대 투자하지 말라'며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고 했다.

서울 마포구의 마포인재육성장학재단은 지난 1월 "만기가 된 정기예금 20억원을 수시입출식 예금 상품(MMDA)에 투자하게 해달라"고 관할 교육청에 신청했다. 한 달 뒤 열리는 이사회에서 다음 투자처를 결정할 때까지 원금을 놀리기 아까웠기 때문이다. MMDA는 원금을 수시로 넣었다 뺐다 할 수 있는 데다, 보통예금보다 금리가 높다. 원금도 보장된다.

하지만 담당 공무원은 "이전에 허가가 난 적이 없는 생소한 상품" "원금 손실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불허했다. 이 재단 관계자는 "원금이 보장된다는 상품설명서를 읽어 보지도 않고, '전례가 없었다'는 이유로 거절하면 투자할 수 있는 상품이 얼마나 되겠나"며 "사실상 예금 상품 이외에는 투자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펀드나 MMDA 같은 금융 상품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는 공무원들이 공익법인의 투자 허가권을 갖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주장한다.

정무성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자주 자리가 바뀌는 담당자 공무원 한두 명이 재단의 투자 활동을 관리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재단 문제를 담당하는 통합 기구를 만들어 재단의 운영을 체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픽] 전국 17개 시도(市道) 교육청의 장학재단 투자 허가 현황 기고자 : 특별취재팀 이민석 윤형준 백수진 양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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