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신발 뒤축을 꺾어 신고 다니면 "단정하지 못하다"며 혀 차는 소리를 듣기 일쑤다. 하지만 이젠 당당하게 뒤꿈치를 드러내도 된다. 신발 뒤축이 없는 '블로퍼'(bloafer)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블로퍼는 뒤가 없다는 뜻의 '백리스(backless)'와 끈이 없고 굽이 낮은 구두를 일컫는 단어인 '로퍼'(loafer) 를 합친 말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중국에서 많이 신던 실크 소재의 슬리퍼와 많이 닮았다.

블로퍼는 여성복 브랜드 '더 로'가 2014년 처음 선보인 신발이다. '더 로'의 수석 디자이너이자 패셔니스타인 메리 케이트 올슨, 애슐리 올슨 쌍둥이 자매가 신고 다니면서 시선을 끌었다. 여배우 엠마 왓슨이 신고 나온 '티비'의 블로퍼가 지난해 품절되면서 본격적으로 유행했다. 지난해 안감에 털을 덧댄 구찌의 블로퍼가 인기를 끌었고, 패션 브랜드마다 뒤축을 없앤 구두를 내놨다.

최근에는 신발 뒤를 없애는 것에서 더 나아가 접어 신을 수 있도록 만든 신발들이 눈에 띈다. 셀린과 아크네 스튜디오, 빅토리아 베컴에서는 신발 뒤를 아예 꺾은 채로 내놨다. 이왕 꺾어 신을 거, 예쁘게 꺾자는 것이다.

셀린의 블로퍼 이름은 '바부슈'(babouche). 바부슈는 터키·중동·북아프리카에서 신는 전통 슬리퍼로, 이 신발 역시 뒷부분이 원래 꺾여 있다. 구찌에는 로퍼와 블로퍼 겸용으로 쓸 수 있는 신발도 있다. 가죽이 매우 부드럽고, 구겨 신기 좋은 부위에 박음선을 새겨놔서 원할 때마다 그 선을 따라 꺾어 신으면 된다. 발목 뒷부분이 없는 신발과 꺾어 신도록 만든 신발은 올봄부터 백화점 명품관부터 반포 고속터미널 지하상가 신발 코너의 인기 제품이다.

왜 멀쩡한 신발을 꺾어 신을까? 신발이 상할 수도 있거니와 집 앞에 심부름 가는 꼴로 보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반전 때문이다. 앞에서 봤을 땐 단정한 느낌의 로퍼인 줄 알았는데, 뒤에서 보면 장난스러운 느낌의 슬리퍼다. 요조숙녀와 말괄량이 두 모습을 한 번에 보여주는 셈. 게다가 신발을 구겨 신을 때, 남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분위기를 전달하기도 한다. 무심함과 자신감을 동시에 드러내는 것이다.

격식을 갖춰야 할 자리가 아니라면 함께 옷을 맞춰 입기는 어렵지 않다. 슬리퍼 같기도, 구두 같기도 해서 어느 분위기에나 어울리기 때문이다. 다만 9부나 그보다 짧은 길이의 바지나 치마를 입는 것이 좋겠다. 기껏 발꿈치를 드러낸 신발을 신었는데, 발꿈치를 가리는 옷을 입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리고 당연히, 맨발인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