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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시험이 200일도 안 남았는데 갑자기 이러는 게 어디 있나요? 진작 알았으면 이과(理科)를 가는 건데…."

4일 서울 서초고 3학년 교실. 중간고사를 마친 이 학교 문과 학생들은 전날 정부가 발표한 '프라임(산업 연계 교육 활성화 선도 대학) 사업' 소식을 듣고 울상부터 지었다. 전국의 4년제 대학 공대(工大) 정원을 1~2년간 최대 1만명까지 늘리고, 그만큼 인문·사회, 예체능 계열 정원을 줄이기로 정부가 발표했기 때문이다.

당장 올해 수능(11월 17일)을 6개월 정도 남겨놓은 상황에서 대학 입시요강이 바뀌게 되자 학생들은 불안해했다. 3학년 이소원(18)양은 "수시 모집에 지원하려고 지금까지 경제·경영 동아리 활동을 2년 넘게 꾸준히 했는데, 지금 와서 문과 정원을 줄인다고 하니 황당하다"고 했고, 이경원(18)양은 "기존 계획을 믿고 공부해온 우리는 어떡하느냐"고 했다. "완전히 뒤통수를 맞았다" "공급자 위주의 교육 정책"이라는 반응도 있었다.

'자녀가 상경계를 지망한다'는 서울의 고3 학부모 임모(46)씨는 "수시 모집에 지원하려면 지금쯤 어느 대학 무슨 과를 넣을지 결정해야 하는데, 이번 정부 발표로 다시 전략을 세워야 할 판"이라며 "정부가 입시를 예측 가능하게 하겠다고 하고선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는 거냐"고 했다.

일선 교사들도 혼란스러운 표정이다. 서울 문일고 진로진학부장 김혜남 교사는 "공학 중심으로 사회 수요가 변하는 건 인정하지만 지금 열심히 대입을 준비 중인 아이들을 배려한다면 이렇게 갑자기 입시를 흔들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정부의 이공계 정원 확대 방침에 따라 학교에서 이과 쏠림 현상은 더 심해질 것으로 예측됐다. 서울 휘문고의 경우 현재 고3 13개 반 중 10학급, 고2 14개 학급 중 11개 반이 이과반이다. 신동원 교장은 "대학 이공계 정원이 더 늘어나면 이과 쏠림 현상이 더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예체능 계열 학생들도 박탈감이 심하다. 전국 4년제 대학의 예체능 계열 입학생은 2012년 4만1695명에서 2015년 3만9497명으로 5.2% 정도 줄었는데 앞으로 더 축소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서울의 한 예술고 교장은 "그동안 '대학 구조 개혁'이란 명분으로 예체능 학과들을 희생시켜왔는데 프라임 사업으로 아이들 좌절감이 더 커졌다"며 "정부가 '한류' 'K팝' 등 문화 예술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정작 대학 정원을 줄이는 건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교육부는 "당장 올해부터 조정된 학과 정원으로 입시를 치러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학마다 '프라임 사업' 등으로 통폐합되는 학과가 적지 않은데, 이들 학과가 전년도처럼 입시를 치르면 지원하는 학생이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고등교육법 시행령'에 학과 개편과 정원 조정시 입시 당해년도 5월 말까지 수정해 공지할 수 있다는 규정을 들고 있다.

하지만 문과를 준비하는 학생을 중심으로 불만이 커지자, 대학들은 문·이과 교차(공통) 지원 등을 확대해 문과생들 입시 불이익을 줄이겠다는 입장이다. 건국대·영남대·이화여대 등은 4일 "올해 정시 모집에서 일부 신설 학부와 학과에 문과생의 교차 지원 허용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한양대 에리카(ERICA) 캠퍼스는 정시 모집에서 일부 프라임 사업 학과 정원의 일정 비율을 문과생들로 뽑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문과생들의 교차 지원을 허용한다 해도 실제 얼마나 많은 문과생이 공대로 진학할 수 있을지는 불명확하다. 예컨대 이과 과목인 '수리 가'와 '과학탐구'에 가중치 점수를 줄 경우 이과 학생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영덕 대성학력개발연구소장은 "수능 문·이과 과목별 가중치를 주지 않으면 문과생들도 정시 모집을 통해 공대에 진학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