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5일(한국 시각) 미국 오클랜드 오코 콜리세움. 홈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 7－8로 끌려가던 7회 2사 2루에서 이대호(34·시애틀 매리너스)가 타석에 섰다. 느린 공(커브) 2개와 빠른 공 2개를 지켜본 그는 5구째 95마일(153m)짜리 직구에 배트를 휘둘렀다. 빠르게 왼쪽으로 뻗어나간 타구는 그대로 담장을 넘었다. 시즌 4호, 비거리 109m짜리 투런포였다. 맞는 순간 홈런임을 직감한 이대호는 팀 동료들이 있는 1루 쪽 더그아웃을 향해 주먹을 불끈 쥐었다. 팀은 그의 역전 결승 홈런에 힘입어 9대8 승리를 가져가며 3연승을 달렸다.

이대호는 앞서 6회에도 솔로포를 터뜨렸다. 4－8로 뒤진 상황에서 상대 우완 투수 라이언 덜의 초구(146㎞ 직구)를 받아쳐 중월 홈런을 만들었다. 그는 이날 멀티 홈런(시즌 3·4호)을 쳐내며 4타수 2안타 3타점을 기록했다. 이로써 이대호는 한국, 일본, 미국 무대에서 모두 연타석 홈런을 치는 진기록도 세웠다. 시애틀 지역 매체 '더 뉴스 트리뷴'은 "한국에서 온 34세 루키(신인 선수)는 드라마를 만들 줄 안다"고 평했다.

◇경쟁자 압도하는 빅보이

스콧 서비스 시애틀 감독은 1루 자리에 철저한 '플래툰 시스템(상대 투수에 따라 선수를 번갈아 기용하는 것)'을 적용한다. 주전 1루수이자 좌타자인 애덤 린드(33)는 상대 선발이 우완일 때 출전하고, 우타자인 이대호는 그 반대의 경우에 선발로 나선다. 이날도 오클랜드가 좌완 숀 마나에아를 선발로 내세우자 시애틀은 백업인 이대호를 내보냈다. 하지만 이대호는 마나에아에겐 안타를 뽑아내지 못했다. 대신 우완 투수 2명을 상대로 잇달아 홈런을 터뜨려 플래툰 시스템을 무색하게 했다. 9회 올라온 오클랜드의 우완 라이언 매드슨은 무사 2·3루에서 이대호가 타석에 들어서자 고의사구를 내줬다.

이대호의 선발 출장은 지난달 28일 이후 딱 7일 만이다. 이대호는 주전인 린드 이상의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다. 린드는 23게임에 출전해 타율 0.230에 1홈런 5타점을 기록 중이다. 이대호는 15게임(선발 9경기)에 나서 타율 0.281, 4홈런(6타점)을 올렸다. 이대호의 장타율(0.656)은 린드(0.297)의 두 배가 넘는다. 서비스 감독은 이날 경기 후 "상대팀이 우투수로 교체했을 때도 계속 이대호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다"며 "결과적으로 성공이었다. 그의 홈런 두 방이 없었다면 아마 패했을 것"이라고 했다.

◇영양가 만점 '대포'

이대호는 제한된 기회 속에서도 값진 활약을 펴고 있다. 그가 이날 6회 터뜨린 솔로포는 팀이 뒤지고 있던 상황에서 추격의 발판이 됐고, 7회 홈런은 역전포이자 결승 타점이었다. 에이스인 펠릭스 에르난데스가 4이닝 8실점 하며 패색이 짙었지만 이대호의 홈런 두 방이 팀을 살렸다. 이대호는 지난달 14일 텍사스 레인저스전에선 연장 10회 대타로 나서 끝내기 2점포를 쏘아 올렸고, 팀은 5연속 패배 후 귀중한 1승을 챙길 수 있었다.

'타수당 홈런'에서 이대호는 8타수당 1홈런(32타수 4홈런)을 기록 중이다. 이 부문 아메리칸 리그 선두인 박병호(11.3타수당 1홈런)보다 좋지만 규정타석이 모자라 기록은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더 많은 기회가 온다면 다른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팀 내 위상도 높아지고 있다. 경기 후 시애틀의 포수 크리스 아이아네타는 자기 SNS에 "이대호는 오늘 활약으로 K팝을 재정립했다. 그는 경기장에 폭탄을 투하했다"고 썼다. 서비스 감독도 "(이대호는) 일단 출전하면 팀에 공헌할 줄 아는 선수"라고 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서비스 감독은 지난 2일 샌프란시스코의 한국 식당에서 이대호와 저녁 식사를 하며 그를 '록스타'라고 불렀다. 한국과 일본에서 그의 높은 인지도를 두고 건넨 말이었다. 이대호는 "하지만 난 이곳에서 신인선수일 뿐"이라고 답했다.

[그래픽] 출전은 적지만 경쟁자 압도하는 이대호 / 이대호 홈런은 '영양 만점' 기고자 : 이순흥
본문자수 : 1990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