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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저성장의 고통을 극복하려면 제4의 산업혁명이라 불릴 만한 혁신이 필요합니다."

세계적 혁신론자로 평가받는 로버트 고든(Gordon·76) 미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산업혁명 이후 2000년대까지 약 250년간을 인류가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룬 '예외적인 시기'로 규정한다. 그것은 인류의 삶 자체를 바꿔놓은 위대한 혁신 덕분이었지만 2005년부터 더 이상의 혁신은 벽에 부닥쳤고, 혁신의 영향력도 줄어들었으며, 고속성장 시대도 막을 내렸다고 그는 진단한다. 고든 교수의 이 같은 분석은 전 세계가 경제침체의 늪에 빠져 있는 최근 국제 경제학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인류는 로마시대부터 18세기까지 계속됐던 저성장의 '뉴 노멀(New Normal)'로 돌아가고 있는 것인가. 저성장의 늪을 헤쳐나갈 방법은 없는가. 미국 시카고 인근 소도시 에번스턴에 있는 노스웨스턴대 고든 교수의 연구실에서 얼마 전 그를 만났다.

첫 질문으로 "경제성장과 관련해 당신은 비관론자인가"라고 묻자 그는 "나는 비관론자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미국 등 선진국은 성장의 어려움을 좀 더 심하게 겪겠지만 개발도상국들은 이를 따라잡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말했다. "세계경제를 주도해온 선진국들은 근본적인 삶의 혁명을 이뤄낼 혁신을 이루기 어려워지고 여러 가지 사회적 변화, 즉 역풍(headwind)이 혁신의 효과를 이전보다 감소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혁신이 삶의 변화를 이끌어 온 사례들을 설명했다. 전기의 발명은 세탁기와 냉장고를 만들어 19세기 말까지만 해도 일주일에 이틀을 빨래로 보내고 매일 장을 봐야 했던 여성들을 해방시켰다. 상수도는 연간 238㎞를 걸어 35t의 물을 길어야 했던 여성들을 해방시켰고, 하수도는 콜레라 같은 수인성(水因性) 전염병을 몰아냈다. 1879년 내연기관이 발명된 후 딱 30년 만에 미국의 가구당 자동차 소유율이 90%가 됐고, 이로써 매일 11~22㎏의 대변과 4.5L의 소변을 길거리에 배설하면서 미국 농지 생산량의 4분의 1을 먹어치우던 말(馬)을 대체했다.

고든 교수는 "지금까지 인류는 증기기관을 발명한 산업혁명, 전기혁명, 디지털 혁명 등 세 번의 혁명을 겪었는데 디지털 시대의 가장 중요한 혁신은 이미 다 이뤄졌고, 네 번째 혁명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한 번의 혁명이 나오기 어렵다고 보는 근거가 뭐냐"고 묻자 그는 "나는 25년 정도만 전망을 하는데 요즘 연구가 한창인 무인 자동차는 앞으로 점진적 발전을 하겠지만 사람들이 수백만대의 기존 차들을 갑자기 버리지는 않을 것이고 천천히 교체될 것이기 때문에 혁명(revolution)이라기보다는 진화(evolution)로 불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령화에 의한 생산성의 감소, 교육비 폭등으로 인한 고등교육의 감소, 소득 불평등, 재정적자 등 역풍을 이겨내야 하는 것도 과제"라면서 "미국의 경우, 향후 25년을 전망할 때 1995년 이전 수준인 연간 성장률 1.4% 수준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성장의 정체로 생기게 될 사회의 부정적 변화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결혼율이 낮아지고 편부모 가정이 늘고 저소득층이 증가하게 되며 고등교육을 마치는 학생들이 줄어들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는 어린이가 늘어나 지금까지는 다음 세대가 이전 세대보다 두 배 이상 잘살게 돼 왔지만 앞으로는 다음 세대들이 이전 세대보다 더 불행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저성장은 매우 부유한 사람들만의 소득을 증가시켜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등 교육을 받은 젊은이들조차 일자리가 없는 한국의 고민을 해결할 방법에 대해선 "한국 역시 개발 단계의 고원(Plateau)에 도달해 저성장의 고통을 기존 선진국보다 더 크게 겪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 미국에 비해 의료비, 교육비 부담이 적은 반면, 고령화 문제는 미국보다 더 심각하다"며 "이런 특성을 잘 파악하고 상황에 맞게 대처할 수 있는 정책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고든 노스웨스턴大 교수는

로버트 J. 고든(Robert J. Gordon·76) 미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생산성과 경제성장, 인플레이션, 고용 등의 상관관계를 연구한 세계적인 거시(巨視) 경제학자다. 2013년 블룸버그가 선정한 10대 영향력 있는 사상가에 포함됐으며 2002년 출간된 저서 ‘거시경제학(Macroeconomics)’은 8개 국어로 번역됐다. 2012년 발표한 논문을 계기로 미국 내에서 혁신 논쟁이 불붙었다.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석사, MIT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기고자 : 김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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