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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베의 하늘이 잿빛으로 변했습니다. 방 형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일본 땅 고베에서 들었습니다. 팔갑산에 둘러싸인 이 항구를 떠나는 유람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의 갑판에 혼자 앉아 바다와 산과 잿빛으로 변한 하늘을 바라보며, 방 형을 생각하며 울었습니다. 나 혼자 앉아서 울었습니다.

병상에 누워 병마와 싸우시던 모습이 떠올라 나는 매우 처량한 느낌에 사로잡혔습니다. 형이 아예 희망이 없다고 판단하고 곡기를 끊었다는 소식을 후배인 김동건이 전해주어 의사의 지시에 따라 면회 사절임에도 불구하고 달려갔습니다. "방 형, 이러시면 안 됩니다. 목숨을 걸고 38선을 넘어 월남한 우리가 다시 38선을 넘어 고향 땅을 밟아 보기 전에야 끝낼 수 없지요. 형의 고향 정주에도, 내 고향 맹산에도 다시 한번 가보기 전에는 끝낼 수 없어요. 어서 죽이라도 한술 드셔요." 야단을 치듯 큰 소리로 강권하고 돌아왔습니다.

그 뒤에 다시 병문안을 갔을 때에는 병세가 좀 호전된 느낌이어서 상당한 희망을 갖고 돌아왔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병원 뜰을 산책한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방 형. 미수(米壽) 잔치 때 단 위에 나란히 앉았던 신영균, 김봉균, 김동길 우리 세 사람은 늘 형을 바라보고 살았는데 우리를 두고 이렇게 홀연히 가시니…. 가시리 가시리잇고 우리를 두고 가시리잇고, 우리의 적막한 느낌을 어찌해야 옳습니까.

특히 나와는 대학 1학년에 들어갔을 때부터 친구이니 70년은 되었지요. 나와 친구들이야 남은 날들을 그럭저럭 보낸다 하여도 "아들과 딸들, 그리고 현숙한 부인이 앞으로 어떻게 사나" 생각하니 마음이 괴롭기만 합니다. 따지고 보면 방 형의 신세를 지지 않은 친구가 없을 듯합니다. 나라의 대들보가 하나 폭풍에 쓰러진 느낌입니다.

형은 나보다 한발 먼저 천국에 가셨다고 믿습니다. 햇빛보다 더 찬란하게 빛나는 천국이 있음을 방 형도 믿고 나도 믿습니다. '믿는 맘 가지고' 갑니다. 나도 머지않아 형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거기서, 그 빛나는 천국에서!

방 형이 있어서, 방 형이 몸 바쳐 일한 '조선일보'가 있어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승리했습니다. 계초 방응모 선생께서 시작하신 그 큰일을 방 형은 이어받아 잘 키웠습니다. 크게 키웠습니다. 형은 젊어서부터 정의의 투사였고 민주주의의 투사였습니다. 고려 말의 선비 길재와 함께 이렇게 읊어 봅니다.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본문자수 : 1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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