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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빚을 늘린 뒤 안 갚을 수도 있다"고 발언해 파문을 일으켰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大選) 주자가 이번엔 "돈을 찍어 갚으면 된다"고 해 또다시 논란을 일으켰다. 국채를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해 달러를 찍어 갚으면 그만이라는 얘기인데, 전문가들은 "전 세계 금융시장을 무너뜨리고 세계경제를 파탄에 빠뜨릴 위험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트럼프는 9일(현지 시각) CNN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내가 부채를 늘리고 상환 불이행(디폴트)을 할 것이라고 말하는데 미친 사람들"이라며 "여기는 미국 정부인데 돈을 찍어 갚으면 되지 못 갚을 일은 없다"고 했다. 이 발언은 지난 5일 경제 전문 방송 CNBC와 가진 인터뷰에서 한 자신의 발언이 '빚을 안 갚겠다'고 한 게 아니었다고 해명한 것이다. 그는 당시 인터뷰에서 "나는 부채(負債)의 왕"이라며 "미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 빚을 더 낼 것이고, 아주 낮은 금리로 장기 차입하기 위한 채무 재조정을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이 발언은 19조달러(약 2경2210조원)가 넘는 미국 국채에 대해 채무 재조정, 이자율 조정, 원금 탕감 등으로 돈을 갚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한 것으로 해석됐다.

논란이 커지자 최근 트럼프 캠프 재무책임자로 영입된 스티븐 누친 듄(Dune)캐피털 매니지먼트 회장이 6일 "미국 정부는 채무를 이행해야 한다"고 발언하며 진화에 나섰다. 이어 트럼프도 CNN 인터뷰에서 '돈을 갚지 않겠다고 한 게 아니다'며 무마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이 발언이 되레 더 큰 비판을 샀다. 달러를 마구잡이로 찍어대면 대표적 안전 자산인 미국 국채의 신뢰성이 무너지고 전 세계 투자자들이 금 같은 실물 자산으로만 몰려 금융시장이 붕괴될 것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금융 전문 매체 마켓워치는 "트럼프가 경제 현안과 관련해 얼마나 허황된 생각을 갖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비판했고, 보수주의 정책 연구 기관 '아메리칸 액션 포럼'의 더글러스 홀츠-에이킨 대표는 "세계 금융 무대에서 북한처럼 믿을 수 없는 상대로 여겨지는 일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의 이 같은 좌충우돌식 경제 관련 발언이 누구의 머리에서 나오는지도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트럼프 캠프에는 제대로 된 경제정책 담당자가 눈에 띄지 않는다. 월가의 억만장자 투자자인 칼 아이칸이 '트럼프 정부'의 재무장관 1순위로 꼽히고, 아이오와에서 정치판을 기웃거리던 샘 클로비스 모닝사이드대 교수가 정책 자문역이다. 그나마 최근 영입한 월가의 금융 전문가 누친 회장이 트럼프의 발언과 정반대로 '부채는 갚아야 한다'고 했다.

트럼프의 경제 관련 공약도 오락가락하고 있다. 지난해 8월 말 트럼프는 부자 증세(增稅), 기업 해외 이전 방지, 연방정부 부채 한도 축소, 오바마케어(전 국민 의료보험) 폐지, 보호 관세 부과 등 '경제 계획 5개항(Economic Plan 5)'을 발표했다. 그러나 연방정부의 부채 한도를 줄이겠다고 했던 건 "부채를 사랑한다"는 말로 정반대가 됐고, 부자 증세 역시 감세(減稅)와 증세를 오락가락하다가 '부유층과 중산층 전체가 세금 감면 혜택을 볼 것'으로 바뀌었다.

당시에도 이 경제 공약들이 누구 머리에서 나왔느냐가 논란이 됐지만 트럼프 자신의 생각이라는 해석이 우세했다. 허핑턴포스트는 "그의 경제 논리는 자신의 머리에서 나온 트럼피즘(Trumpism)"이라고 했고, 포브스는 "트럼프 솔루션의 핵심은 트럼프가 쓴 책 '이젠 거칠어질 때(Time to Get Tough)'의 내용 중 일부"라고 했다. 경제 브레인 없는 독불장군식 발언이 더 쏟아질지 모를 상황이다.

[그래픽] 도널드 트럼프의 국가 부채 관련 발언과 그에 대한 비판 기고자 : 김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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