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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의 부상(浮上)과 '필리핀의 트럼프'로 불렸던 로드리고 두테르테 후보의 '대통령 당선 확실'에는 기존 정치와 사회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저변에 깔려 있었다. 경제적 양극화, 특정 종교나 이민자, 여성에 대한 반감(反感) 등을 바탕으로 하는 이른바 '분노의 정치'가 세계적 현상이 되면서, 내년 대선을 앞둔 한국에도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도 '분노 정치' 기반이 형성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트럼프 현상'이 빈부 격차에 좌절한 몰락 중산층 및 빈곤층 백인 남성의 분노를 바탕으로 한 것처럼, 한국에서도 다양한 분노 계층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20~30대는 취업난과 실업으로, 40~50대는 주택난과 중산층 붕괴 등으로 기존 정치 체제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집권 여당의 참패로 끝난 4월 총선이 하나의 전조(前兆)가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이번 총선은 20~30대는 물론 기존 정당에 실망한 50~60대의 분노가 여당의 패배, 제3당의 출현이라는 결과를 낳았다"고 했다. 그러나 4월 총선은 '제3당'이라는 분노의 완충 지대를 만들며 극단적 충돌은 피해갔다는 점에서 본격적 '분노의 정치'로 보기 힘들다.

그러나 내년 대선에서는 '분노 정치'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홍성걸 국민대 교수는 "총선 이후 새누리당에서는 차기 후보는 물론 집권 비전조차 보여주지 못하며 자중지란에 빠져 있다"며 "전통적 보수층이 새누리당의 모습에 좌절하고 분노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층의 분노를 바탕으로 상궤(常軌)를 벗어난 정치인들이 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달리 '분노의 정치'가 진보·좌파 진영에 유리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한인섭 서울대 교수는 "한국의 청년들과 몰락한 중산층의 분노는 미국의 트럼프 같은 인물이 아닌 강성(强性) 진보 성향 정치인에 대한 표 쏠림 현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트럼프 현상'까지는 아니어도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여러 차례 있었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정치 풍자를 내건 '나꼼수'가 신드롬을 일으켰다. 그러나 '나꼼수'는 김용민씨의 막말 파동으로 국회 입성 직전에 스스로 무너지고 말았다. 봉영식 아산정책연구원 초빙 연구원은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정보를 마음대로 발신·유통할 수 있게 되면서 '이상한 정치' '몰상식 정치'에 대한 기존 지식 사회와 언론의 경고가 무력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기고자 : 정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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