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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가와 막부(幕府)의 교토(京都) 별궁인 니조성(二條城) 방문은 '궁궐은 멀리 떨어져서 눈으로만 보는 것'이라는 선입견을 깨는 경험이었다. 신을 벗고 고성(古城)의 마루에 올라섰다가 몸무게에 눌린 바닥이 부서질 듯 삐걱대는 바람에 마음이 불안했다. "우구이스바리(鶯張り· 휘파람새 마루)입니다. 자객의 침입을 막기 위해 일부러 소리가 나도록 설계한 것이니 맘 놓고 걸으세요." 동행자 설명이 머리에 콕 박혔다.

마루 오른쪽으로 방이 이어졌다. 그중 한 곳에서 역사의 한 장면과 마주쳤다. 에도(江戶) 막부의 마지막 쇼군(將軍)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전국의 다이묘(大名)들 앞에서 일왕(日王)에게 통치권을 돌려주는 대정봉환(大政奉還·1867)을 선언할 때 상황이 사람 크기 인형으로 재현돼 있었다. 그 자리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한·일 강제합병, 중일 전쟁·태평양 전쟁 등 그날 이후 일본의 욱일승천과 파란의 동아시아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궁궐을 이런 식으로 개방한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복도를 따라 걷는 내내 '이처럼 생생한 역사 교육이 또 어디 있나!' 연방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역사 유적도 일본처럼 대부분 목조(木造)다. 그런데 니조성 사례에서 보듯 일본은 목조 유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반면, 우리는 오랜 기간 문화재 보존 명목을 앞세워 먼 거리에서 지켜보기만 했다. 궁궐에 가면 전각의 쓰임새나 내부 형태는 낯설고 그 앞에 내건 '출입 금지' 팻말만 익숙했다. 소설가 최인호는 1980년대 초 발표한 장편 '고래사냥'에서 사람의 접근이 금지된 숭례문이 밤만 되면 노숙자들이 들어가 밥 해먹고 잠자는 숙소로 뒤바뀌는 모습을 그렸다. 그때는 소설 설정이려니 하며 웃고 넘겼는데, 훗날 숭례문이 방화로 소실된 후 실제로 노숙자들이 그곳에서 생활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파문이 일기도 했다.

지난 주말, 고종의 서재인 집옥재(集玉齋)가 일반에 개방됐다는 소식을 듣고 경복궁을 찾았다. 내 발로 딛고 선 그곳은 더 이상 먼발치에서 무심히 바라봤던 그 건물이 아니었다. 마루 오른쪽에 고종의 어진(御眞·왕의 초상화)이 눈에 들어왔다. 120년 전 바로 이 자리에서 서양 신학문 관련 서책을 모아놓고 외세에 맞서 자강의 길을 찾느라 부심했을 왕의 절박함을 상상했다. 니조성을 보고 왔기에 더 안타깝고 생생했다.

집옥재 개방은 지난달 29일부터 8일까지 경복궁·창덕궁·덕수궁 등에서 진행된 '궁중문화축전' 프로그램 중 하나다. 축전 내용을 살펴보니 궁궐 내부를 파격적으로 공개한 행사가 많았다. 대궐 안 음식을 만들던 경복궁 소주방도 지난해 100년 만에 복원이 완료돼 이번에 직접 음식을 맛보는 행사를 실시했다. 함화당과 집경당에서 하룻밤 잘 기회도 있었다. 눈으로만 봤던 궁궐이 시민 품으로 다가온 것 같아 반가웠다.

진작 이렇게 해야 했었다. 그러나 아쉬움이 없지 않았다. 궁궐 개방이 축제 위주로 흘러 역사적 의미 찾기가 미흡해 보였다. 일제에 끌려갔다가 몸과 마음이 망가진 채 돌아온 영친왕과 덕혜옹주 남매가 최후를 맞은 낙선재에 두 사람의 늘그막을 재현하거나, 인정전 앞마당에다 강제합병 조약 체결 후 치욕의 기념촬영을 했던 당시 장면을 복원해 후세의 경계로 삼는 것도 고려해 볼 문제다. 기고자 : 김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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