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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보고 싶다. 그곳에선 사랑받으며 못 피운 공부, 마무리 못 한 피아노, 하고 싶었던 태껸, 꿈이었던 만화가, 못 했던 데이트, 못 했던 여행, 가지고 싶던 자동차, 꼭 이루렴….'

2010년 천안함 폭침으로 사망한 고(故) 정범구 해군 병장에게 어머니가 남긴 글이다. 그 어떤 시(詩)보다 애절한 울림을 준다. 이 글을 전한 이는 조재구(64) 전 중화TV 대표. 그는 서울 동작구와 대전 유성구에 있는 국립현충원에서 채록(採錄)한 165편의 비명(碑銘)을 모아 최근 '님은 조국의 별이 되어'(MCN미디어)란 책을 펴냈다.

조씨는 평소 틈날 때면 서울과 대전의 현충원을 오가며 묘비와 무덤 앞 액자에 남겨진 글 등을 받아 적어 왔다. 그렇게 서울과 대전을 합쳐 29만 위가 넘는 호국 영령에게 바쳐진 글 중 1000편 가까운 헌사를 모았다. 이 중 내용이 유사한 것, 종교적 색채가 강한 것 등을 제외한 글을 이번 책에 담았다. 제목은 일일이 직접 달았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몸바쳤던 애국지사, 6·25와 베트남전 전사자, 연평해전과 천안함 폭침 사건으로 숨진 장병 등을 위해 유가족과 동료들이 남긴 글에는 한국사의 아픈 장면이 곳곳에 새겨져 있었다. 2005년 8월 돌아가신 애국지사 고 이규창씨는 '조국에 오니 집도 먹을 것도 없는 형편이나, 망명지에서 순국 아사한 가족을 회상하며 (중략) 자유주의 국가 건설을 위해 매진하기를 축원한다'는 비명을 스스로 남겼다. 고 백기인 공군 대위의 묘에는 '나는 혼자 날았습니다, 그리고 혼자 갔습니다. 하지만 모두를 사랑했습니다. 아직도 사랑합니다. 나는 하늘 속에 영원합니다'라고 새겨져 있었다. 스무 살밖에 살지 못한 젊은 아들에 대한 부모의 회한, 자신보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위해 훗날 딸이 남긴 비명 등 애틋한 글도 많다.

그는 "1985년 어느 날인가 6·25 전쟁에 학도병으로 참전했다가 돌아가신 작은아버지의 위패가 모셔진 충혼탑에 참배를 왔다가 비석마다 글이 새겨진 것을 보고 '이 글들이야말로 어떤 문학 작품보다 훌륭한 내용 아닌가' 생각했다"며 "그 이후 틈만 나면 노트와 펜을 들고 국립묘지를 다녔다"고 했다. 주말에 날씨가 좋으면 서울현충원을 찾았고, 대전현충원에 갈 때는 아내와 함께 1박 2일로 짧은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글을 모으는 데는 시간이 꽤 걸렸다. 여름에 풀이 무성해지면 비석 앞바닥에 새긴 글귀가 잔디에 덮여 잘 보이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혹시 놓친 글귀는 없는지 같은 묘역을 몇 번씩 찾기도 했다. 11일 오전 서울현충원에서 만난 그는 마치 자기 집처럼 어느 묘역, 어느 묘비에 어떤 글귀가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는 "혼자 노트에만 모아 놓았다가 비장하면서도 애틋한 이 이름 없는 개인들의 사연을 다른 분들에게도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누가 하라고 한 일도, 시켜서 될 일도 아니었다. 그는 "주위에선 '현충원이 해야 할 일을 왜 당신이 하느냐'는 말도 들었지만, 우리가 어떤 희생을 치른 나라에 살고 있는지 생각하면 차분해지고, 살아갈 힘이 생겼다"고 했다.

기고자 : 신동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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