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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강세"

칸 국제영화제 소식지라고 할 수 있는 스크린 인터내셔널 데일리가 14일자에 쓴 기사 제목이다. 한국 영화가 세계적으로 소비되고, 아시아권에서 합작이 활발하다는 내용과 "올해 영화제에서 한국 영화들이 눈에 띈다"고 전했다. 13일과 14일 이틀간 칸 영화제에서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와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이 상영됐다. 두 감독과 배우들은 칸 영화제 관계자와 관객들 환호를 받으며 레드카펫을 걸었다.

"제 영화는 언제나 평점이 좋지 않았어요.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요. 이번엔 모두들 좋아할 줄 알았는데(웃음). 명쾌하고 권선징악이잖아요."

11일 개막한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가 14일 밤(현지 시각)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공식 상영됐다. 세공하듯 정교하게 만든 화면에다 발랄한 유머까지 더해져 상영 중 여러 번 웃음이 터졌다. 상영 후 칸의 의례와도 같은 '5분 기립 박수'가 이어졌지만 손바닥에 힘이 실려있진 않았다. 박 감독 말대로 현지 반응은 엇갈렸다.

할리우드 리포터는 "박찬욱의 정교한 영화 '아가씨'는 기대를 충분히 충족시켰다. 재미있게 꼬인 에로틱 스릴러와 기분 좋은 놀라움으로 가득찬 러브 스토리로 2시간 30분이 금세 지나간다"고 평했다. 각국 주요 매체의 평점을 모아서 알려주는 스크린 인터내셔널 데일리의 평균 별점은 4점 만점 중 2.2점이다. 이날 같이 상영된 '에어드만'(감독 마렌 아데)의 별점은 3.8점. 프랑스 언론의 평가를 모은 르 필름 프랑세즈에서는 '아가씨'가 4점 만점 중 1.73점을 받으면서 지금껏 상영한 6개 작품 중 최하점을 기록했다.

영국 작가 사라 워터스의 '핑거스미스'가 원작이다. 19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한 원작은 박 감독 손을 거치면서 1930년대 식민지 조선과 일본으로 옮겨갔다. 어릴 적 부모를 잃고 후견인인 이모부(조진웅)와 함께 사는 히데코(김민희)에게 새로운 하녀 숙희(김태리)가 온다. 고아이자 소매치기인 숙희는 사기꾼 백작(하정우)과 짜고 히데코의 재산을 가로채려 한다. 히데코 역시 다른 이들을 속이기 위한 계략을 짠다. 서로를 속여야 하는 상황에서 숙희와 히데코는 미묘한 감정을 느낀다. 영화는 원작 '핑거스미스' 초반 3분의 1만 충실히 따라가고, 나머지는 새롭게 각색했다. 줄거리는 원작보다 밝고 간결해서 관객들이 두 시간 반에 가까운 영화를 힘들이지 않고 따라갈 수 있다. 박 감독은 "영화에 상업적 요소가 강해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받을 줄 몰랐다. 그런데 상영 직후 티에리 프레모 집행위원장이 '이게 상업적이라고요?' 하며 놀라더라"고 전했다.

영화 후반부 폭력적인 장면에서 당황하는 관객도 있지만, 박 감독의 전작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농담 수준이다. 폭력을 덜어낸 자리에는 관능을 더했다. 지난 작품 '스토커'와 마찬가지로 막 소녀 티를 벗은 여성의 성(性)을 다루고 있다. 하녀 숙희 역을 맡을 배우 모집 공고에서 "노출 수위:최고 수위, 노출에 대한 협의 불가능합니다"라는 조건을 단 게 납득이 갈 정도로 두 여주인공의 정사 장면은 수위가 높다. 김민희와 김태리가 열연했지만 여성의 욕망과 감정을 잘 표현했는지는 의문이다. 과장된 신음과 격렬한 몸짓은 남성의 성적 판타지 속 여성의 욕망을 충실하게 보여준다. 오히려 상대의 몸에 거의 손을 대지 않는 장면에서 뜨거운 정적이 흘렀다. 박 감독은 "내가 어떻게 찍어도 그런 얘긴 나올 수밖에 없다. 욕망과 충동에 달려가는 거칠고 과격한 섹스보다는 친밀하고 부드러우며 대화에 가까운 섹스를 그리려고 했다"고 말했다.

'아가씨'에선 여성이 남성을 모든 면에서 압도한다. 두 여성의 관계는 따뜻하고 격정적이며 아름답지만, 남성의 성은 차갑고 뒤틀렸으며 폭력적이다. 이들은 여성과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관계를 맺는 데 실패한다. 히데코가 가학·피학적 관계를 다룬 성애 소설을 남자들 앞에서 낭독하는 장면이 이런 대비를 재기발랄하고 우아하게 표현한다. 박 감독이 말했다. "모든 위대한 사람에게서 여성적 섬세함을 발견할 수 있다. 나이가 들어가고 딸을 키우면서 내 안의 여성적 면모를 느끼고 관심을 갖게 된다. 남자가 나이가 들어가는 것은 여성성의 발견이라고 생각한다." 기고자 : 변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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