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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친구들과 경복궁역 근처 먹자골목에서 약초막걸리 한잔했다. 풋풋했던 청년들이 각각 두 아이와 세 아이의 아빠가 된 걸 보니 세월이 무상하다는 걸 실감했다. 그중 하나가 조금 피곤해 보이길래 건강에 이상 없느냐고 물었는데, 돌아온 대답에 깜짝 놀랐다. "고혈압, 당뇨, 고지혈은 한국 남성의 기본이야. 그중 하나 있어야지, 없으면 일을 열심히 안 했다는 증거야." 업무 스트레스에 따른 건강 악화는 한국 남자라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이야기였다.

다른 친구는 벌써 퇴직 이후의 생활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는 "한국에선 40대 남성들이 회사에서 잘 보이려고 제일 일찍 출근한다고, 몇 안 되는 매니저 자리로 승진하기 위해 퇴근을 포기하고 회사에 올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지 고민할 여유가 없다고 했다.

한국 심리학회에서 발표한 한국인의 행복지수에 따르면, 40대 남성들의 행복지수가 가장 낮고 가장 큰 고민거리는 '경제적인 문제'와 '일 또는 업무'였다. 유엔이 공개한 2016년 세계 행복 보고서에도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157개국 중 57위였다 (참고로 핀란드는 4위다). 그날 내 한국인 친구 둘은 특별히 불행해 보이지 않았지만, 모두 이민에 관심이 많았다.

핀란드 40대 남성의 모습은 어떤가. 보통 배가 나오기 시작하고 가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에서 한국 남성과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평일에 아이들 자는 모습밖에 못 보는 한국 남자와 달리 핀란드 남자들은 평일에도 아이들과 놀 시간이 많다. 그들도 고민이 없는 건 아니다. 요즘 핀란드 40대 남성들에겐 가정에서의 역할이 가장 큰 고민이다. 핀란드 여자들은 워낙 독립적이고 돈도 벌고 알아서 다 하기 때문에 남자들이 가정에서 자기 자리를 못 찾고 있는 게 요즘 핀란드 사회의 문제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위로를 건네는 것밖에 해줄 수 없다는 게 안타까웠다. 이민이 답일까? 꼭 그렇지 않다고 본다. 개인적 생각으론, 한국의 밤 문화에 익숙한 남자들은 핀란드에 가면 심심해서 버티기 힘들 것이다.

따루 살미넨·작가 겸 방송인
기고자 : 살미넨,따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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